’1억4,000만’ - 아마도 2010년 선거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가 될 것이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는 선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 숫자 하나만은 기억할 것이다.
e베이의 CEO 였던 멕 휘트먼(54)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 선거운동에 쏟아 부은 액수이다. 정확히는 1억4,000만에서 100만~200만 달러가 더 들어갔다지만 ‘100만’ 단위는 여기서 우수리에 불과하다. 외부 지원금 외에 온전히 자기 돈으로 쓴 선거자금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1억4,000만 달러라는 돈은 얼마나 많은 돈일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숫자일 뿐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간단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연봉이 100만 달러인 사람이 14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되는 돈, 연봉이 10만 달러라면 1,400년 동안 모아야 되는 돈이다.
LA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피자로 돈 계산을 했다. 요즘 도미노스 피자가 세일을 해서 2 토핑 중간크기 2판에 11달러98센트인데, 그 돈이면 캘리포니아 전 가구에 피자를 두 판씩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재정난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 내 모든 학교에 4만 달러씩 지원할 수 있는 돈이라는 계산도 있다.
이런 계산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는 "그 많은 돈을 그렇게 써버려야 했을까?" 하는,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지만, 안타깝고 허망하다는 느낌이다.
금년 선거로 가장 신이 난 것은 TV 방송국들이다. 불경기로 메말랐던 돈이 지난 몇 달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전국에서 후보들이 캠페인 광고비로 쓴 돈은 30억 달러, 그중 20억 달러가 TV 광고로 쓰였다. 기록적인 액수이다. 경제에 대한 좌절감이 현직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자 다급해진 후보들이 광고에 매달린 결과이다.
주지사 선거와 연방상원 선거가 접전인 캘리포니아에서는 TV 방송국들이 노다지를 만났다. 특히 LA 지역 캠페인 광고수입은 1억5,0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요가 많다 보니 2008년 선거 때 2,000달러였던 30초짜리 TV 광고 단가가 5,000달러로 뛰어 올랐다.
이들 방송국에게 가장 반가운 단골이 휘트먼인 것은 물론이다. 휘트먼 진영은 이제까지 8만 여건의 TV 광고를 내보냈다. 13~14억 달러 자산가가 정치적 야심을 위해 1/10 정도 돈을 쓴다는 데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당당한 권리이다.
그렇기는 해도 액수가 워낙 커서 돈을 양동이로 쏟아 붓는 수준이다 보니 안타까움이 없지 않다. 그 많은 돈을 그렇게 써버려야 했을까. 좀 더 의미 있는 곳에 썼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도 남을 액수가 아닌가.
지난 13일 워싱턴 D.C. 인근의 유나이티드 웨이 본부에서는 ‘메리 게이츠 학습센터’ 개관식이 열렸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어머니를 기념하는 학습센터이다. 1,700만 달러가 들어간 온라인 학습센터에 게이츠 가족은 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게이츠로 보면 많은 기부행사 중의 한 행사였을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인 그는 2년 전 50대 초반에 현직에서 물러나 자선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그 부부가 기부한 돈은 자그마치 600억 달러. 웬만한 사람은 자손 대대로 수만 년 벌어도 못 벌 돈이다. 돈 벌기의 고수인 그는 돈 쓰기의 고수이기도 하다.
그런 나눔과 봉사 정신을 그는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개관식에서 말했다. 게이츠 가족의 고향인 시애틀에서 어머니는 교사로 일하며 자선활동과 사회봉사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한때 유나이티드 웨이의 이사로 활동한 인연이 있어서 기념 학습센터가 설립된 것이었다.
투자의 달인이자 역시 기부의 고수인 워렌 버핏은 성공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나를 사랑하는 가가 성공의 척도"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 보다는 얼마나 많이 나누었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의미가 된다.
돈에도 생애가 있다. 게이츠나 버핏의 손에 벌려서 자선사업에 쓰여지는 돈은 생애가 알차다. 사람을 살리는 돈이다. 휘트먼의 1억4,000만달러는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여론조사로 그는 민주당의 제리 브라운 후보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낙선한다면 1억4,000만 달러는 세상에서 가장 허망하게 낭비된 돈이 될 것이다. 선거철에 많은 돈은 쓰레기처럼 버려져서 덧없는 생애를 마친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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