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성왕(東明聖王)은 어느 나라의 시조인가. 고구려가 그 답으로 돼 있다.
이 건국설화에는 그러나 요즘 들어 상당한 논란이 따른다. 동명은 아마도 부여의 시조이고, 고구려의 시조는 주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왜 동명이 그러면 고구려의 시조로 둔갑하게 됐을까. 고대 부족사회에서 흔히 있었던 ‘신화 빼앗기’때문인 것으로 보여 진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여와 고구려는 본래 한 뿌리에서 시작됐다. 후발주자인 고구려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부여족의 뛰어난 영웅이던 동명의 신화를 고구려가 채용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동명이란 인물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오버랩 되면서 고구려의 건국신화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신화 빼앗기’- 더 나아가 ‘신화 만들기’ 작업은 현대에도 계속 되고 있다. 왜곡된 국사 편찬이 한 방편이다. 동원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가 또 다른 형태의 현대판 신화 만들기다.
내셔널리즘이라는 게 그렇다.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신화 만들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민족을 마치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던 ‘초(超)역사적 실재’로 설정한다. 때문에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민족주의는 어디서부터 유래됐는가. 종교가 아닐까 하는 것이 일부의 시각이다. 이 같이 종교라는 프리즘을 통해 내셔널리즘의 본성이랄까, 그 안에 숨어 있는 악마적 요소를 파헤친 사람은 프란츠 로젠바이크란 신학자다.
그는 내셔널리즘을 근본속성에 있어 페이거니즘(pagan-ism)으로 파악했다. 우상숭배에 의해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게 페이거니즘이다. 그 숭배 대상은 부족의 조상으로, 혈통과 스스로의 영역을 신성시 한다. 뒤집어 말하면 ‘집단으로서 나’가 숭배 대상인 게 페이거니즘이다.
‘보편적인 신(神)’의 개념은 없다. 그러니 그 존재를 믿지 않는다. 이 페이거니즘의 세계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경배한다. 이런 그들은 이웃을 학살하는데 있어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선사시대 4000년 동안 원시부족사회에서는 세대마다 남성인구의 40% 정도가 부족 간의 전투에서 학살된 것으로 한 인류학자는 추정하고 있다. 이 집단학살은 소크라테스를 배출한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페이거니즘의 세계가 지닌 속성이 그랬기 때문이다.
아리안 민족주의를 내세운 나치즘 역시 로젠바이크에 따르면 형태만 달리 했을 뿐 근본에 있어서는 페이거니즘이다. 이 네오-페이거니즘, 다시 말해 독일 내셔널리즘의 대두와 함께 수천만이 희생되는 대학살극이 벌어졌다. 2차 대전의 참화가 그것이다.
이후 유럽에서 나온 구호는 ‘Never Again!’이다. 결코 인류대학살의 참사가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다. 내셔널리즘의 악마적 속성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 반성과 함께 민족주의란 이데올로기는 용도폐기가 됐던 것이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그 민족주의가 또 다시 대두되고 있다. 중동에서의 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틀린 진단이다. 아랍 내셔널리즘과 옛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이란 신정체제 내셔널리즘의 갈등에서 그 근본원인을 찾아야 한다.
내셔널리즘은 서남아시아지역에서, 심지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민족주의의 격랑이 그 어느 곳 보다 험하게 몰아치는 곳은 중국이다.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에, 동북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그리고 그 완결판인 국사수사공정(國史修史工程). 이 잇단 역사 수정작업의 목표는 하나다. 신화 만들기다. 중국의 양심적인 역사가들의 지적대로 진실은 5%도 담기지 않았다. 그 역사 수정작업을 거쳐 모든 동아시아 역사의 시원은 중국이라는 중화민족주의 신화를 만든 것이다.
무한대로 펼쳐진 사이버공간도 중화내셔널리즘 선전의 장(場)으로 이용된다. “4억 네티즌의 온라인에는 오직 중화민족주의를 주창하는 획일적인 내용뿐이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적 담론 같은 것은 찾을 길이 없다.” 채트햄하우스의 연구 결과다.
중국 공산당정권의 최우선 관심사는 국민도, 국가도 아닌 계속적인 권력유지다. 이를 위해 민족주의를 동원 이데올로기로 이용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그 네오-페이거니즘의 대처방안은 무엇일까. 로젠바이크는 페이거니즘과 상반되는 요소, ‘예수’를 지목한다. 이 경우 반드시 기독교의 예수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권, 민주주의, 평화, 법치, 정의 등 보편적 가치관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 보편적 가치관을 중국은 계속 거부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만이 중국이 나갈 길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동시에 20대 젊은 세대를 동원해 오늘도 중화민족주의 구호만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리즘 뒤에 숨어 민족의 이름으로, 민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산당지배체제의 중국. 그 모습에서 뭔가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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