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악마도 만났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결국 승리했다.”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지하 622m. 70만t의 암석 아래로 매몰된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흑암뿐이었다. 절망뿐이었다. 그러기를 두 주. 한 가닥 희망이 보였다. 지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속적인 지상 세계와의 터치가 이루어졌다. 그 어루만짐 속에 절망은 소망으로 바뀌었다. 초조한 기다림이 두 달 여를 끈 어느 날 마침내 빛이 내려왔다. ‘피닉스’로 명명된 구조 캡슐이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33명의 광부는 한 명도 남김없이 전원 무사히 구조됐다.
빛 가운데로 나온 한 광부는 부활의 기쁨 속에 외쳤다. 하나님을 만났고 악마도 만났고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승리했노라고. 무엇이 칠레 산호세 광산사고를 구원의 기적으로 마무리지게 했나. 그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대니얼 헤닌거의 주장이다. 이 같은 사고가 20여 년 전에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죽음밖에 없었다. 왜 자본주의인가를 풀어나가면서 그가 먼저 던진 자문에 자답이다.
지난 20여 년 간 엄청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윤의 극대화를 노려서다. 돈을 벌기 위해 저마다 새로운 상품 개발에 여념이 없다.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이다. 그 결과는 도약적인 기술발전이다.
33명의 광부를 구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준 굴착기가 바로 그렇다. 종업원이래야 불과 70여명인 미국 센터록사가 핵심부품인 드릴 해머를 한국의 한 소기업으로부터 주문받아 새로 개발했다. 이 한·미 기술합작의 최첨단 굴착기가 기적창출의 1호 공로자가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의 삼성사는 프로젝터가 연결된 특수 휴대전화를 지하로 내려 보냈다. 통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광섬유 케이블도 연결됐다. 박테리아를 막아주는 특수 구리섬유로 만든 양말도 제공됐다.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이 개발한 이 모든 첨단장비들은 20년 전에는 없었던 신제품으로, 합력하여 공동이익을 가져오는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이 바로 기적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무엇이 기적을 불러왔나. 자본주의의 공로로만 돌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재차 던지는 질문이다.
“저런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칠레의 기적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중국인들이 던진 질문이라고 한다. 해마다 탄광사고로 수 천 명이 희생되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개탄인 것이다.
이 질문 속에서 그 답이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중국에도 자본주의는 존재한다. 그러나 없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다. 그 민주주의가 바로 답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산호세의 기적은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최우등생 칠레에 주어진 선물이라는 게 이 신문의 총평이다. 지난 20년간 칠레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려 이제는 성숙한 민주체제로 자리 잡았다.
그 성숙한 민주주의, 외국으로부터의 도움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개방된 사회, 그리고 재난을 맞아 결연히, 그러면서도 유연히 대처한 파네스티안 파네랴 대통령 정부가 마침내 ‘칠레의 기적’을 가져왔다는 평가다.
왜 민주주의인가. 그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이유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테아 셴 하버드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 인류가 맞고 있는 대부분의 재난은 자연재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결여 등 정치적 원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재난은 어느 사회든지 찾아오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대처방식이다. 모든 정부정책의 우선순위가 재난에 초점을 맞추어 재조정된다. 그리고 투명성이 보장된다.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최소한의 인명피해가 있을 뿐이다.
독재정권, 전제주의체제에서는 그 인명피해가 막심하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지배계층은 국민과 일체감(一體感)을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만의 아사자를 낸 1930년대 소련, 대약진운동기의 중국이 그 대표적 예다. 오늘날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재난은 그러므로 천재지변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이 인재(人災)이며 ‘민주주의 결여’라는 국가의 지배구조문제라는 것이 셴 교수의 지적이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것이다. 김정일이 후계로 지명됐을 때도 그랬다. 지금 상황은 더 말이 아니다. 그런데 3대 세습이라는 무리수를 감행하고 있다. 그러니…” 한 탈북자의 말이다.
한 마디로 사악한 체제다. 전제정(專制政)의 나라다. 공적·사적 영역 할 것 없이 절대 권력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고 가두는 무소불위의 지배욕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 북한에 또 다시 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는 말이다. 3대 세습을 다지기 위해서다.
‘칠레의 기적’을 보면서 왠지 떠올려지는 것이 북한 주민들이다. 블랙홀과 같은 체제, 그 죽음의 체제에 갇혀 신음하는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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