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장하게 생긴 한 인기 여성 탤런트가 세인들의 축복과 부러움 속에 듬직한 체구의 변호사와 화촉을 밝혔다. 누가 봐도 선남선녀라 할 만큼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결혼식 날 신부는 행복에 겨운 듯 연신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이들은 결혼식을 올린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이혼했다. 세인들이 보내 준 축복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는지 두 사람은 쉬쉬하지 않고 보도 자료를 통해 파경에 이르게 된 경위와 심경을 담담하게 밝혔다.
이 커플은 “결혼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의견차가 생겨나 결혼을 며칠 앞둔 시점에 결혼을 재고하자는 얘기까지 나눴지만 이미 세상에 결혼소식이 알려진 마당에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런 차이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성급히 결혼을 진행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파경의 솔직한 사유를 털어놨다. 아니다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 결혼을 강행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뒤늦은 후회였다.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내면의 진솔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만약 결혼에 문제가 있음을 서로가 받아들이고 식을 올리기 전 파혼결정을 내렸더라면 일시적으로는 창피했을지 몰라도 더 큰 고통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어느 정도는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리게 되는 많은 결정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라는 고민에서 나온다. 이른바 체면의식이다. 인기 탤런트 커플쯤 되면 일개 자연인이 아니라 공인 취급을 받기 때문에 체면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구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체면의식이 대개 제한된 영역에서 나타나는 반면 한국인들의 체면의식은 훨씬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나의 어떤 행동이나 처신에 따른 평가뿐 아니라 나를 포장해 주는 것들을 통해 다른 이들의 호의적인 평판을 얻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런 체면의식은 차량 선택에서부터 경조사비 책정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악화된 경제상황에 맞춰 생활수준을 낮추고 규모를 줄이는 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연스런 일이다. 한인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체면의식으로 미뤄볼 때 그 속도는 훨씬 더디지 않을까 싶다.
외곽지역에 살면서 가끔 한인 타운에 나와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한 올드타이머는 “차들은 최고급을 몰고 다니면서도 식사비 내는 일에는 벌벌 떠는 친구들이 많다”며 “알게 모르게 허장성세들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는다. 수도 없이 받게 되는 청첩장에 얼마를 넣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도 다 체면 때문이다. 자기의 형편에 맞추면 될 일 같아도 봉투를 열어 볼 상대의 시선을 의식하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지나치게 체면에 좌우되다 보면 고민과 고통, 그리고 고비용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며칠 전 ‘행복 전도사’로 불리며 긍정의 힘을 전파해 온 최윤희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식은 충격을 던져줬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전문가들은 “행복 전도사라는 타이틀이 굴레가 돼 자신의 고통을 쉬 털어 놓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진단한다.
이솝의 우화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가 높은 곳에 매달린 포도를 따려다 못 따게 되자 신포도여서 따먹지 않는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 오리지널 스토리다. 미국의 한 작가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가 다른 스토리를 구성한다.
여우는 사다리를 발견해 이것을 타고 올라가 포도를 딴다. 여기저기서 숨어 보고 있던 다른 동물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우쭐해진 여우는 포도를 입에 넣는다. 그런데 정말로 신포도가 아닌가. 하지만 다른 동물들의 부러움을 의식한 여우는 표정 한번 찡그리지 못한 채 계속 신포도를 먹어댄다. 그러다 위에 이상이 생겨 죽는다는 것이 현대판 신포도 이야기다.
이 우화는 타인의 시선에 노예가 되고 있는 현대인들을 꼬집고 있다. 당신의 속을 상하게 만들고 있는 신포도는 무엇인가. 포도가 시면 시다고 하면서 뱉어내야 한다. 얼굴 팔림은 순간이지만 그 다음의 평안은 길기 때문이다. 신포도만 뱉어내도 살아가는 일이 한결 수월해 질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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