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기 있는 인문학 서적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시간에 딱 들어맞을 사건이 며칠 전 일어났다.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인 그의 실제 강의를 중심으로 엮어졌다는 이 책은 원제를 보면 더 쉽게 다가온다 -‘정의: 무엇이 옳은 일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시로 부딪치는 문제이다.
지난 주, 이 고민에 심각하게 내몰린 사람들이 있었다. 테네시, 사우스 펄튼이라는 소도시의 소방대원들이다. 뉴스보도를 타고 자신들의 행동이 어항 속 물고기처럼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그들은 괴롭고 혼란스럽다.
발단은 도시 경계선 바깥 시골의 한 모빌홈에서 불이 난 것이었다. 미국의 시골은 워낙 광활해서 소방서가 없는 곳이 많다. 60대 후반의 크래닉 부부가 사는 곳 역시 그런 시골이지만 사우스 펄튼 소방서가 조건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연 75달러의 소방요금을 내면 소방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크래닉은 ‘잊어버리고’ 요금을 내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손자가 뒤뜰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불길이 번지자 크래닉은 911로 전화해 화재 신고를 했다. 하지만 소방서측은 “소방요금 지불 명단에 없다"며 출동을 거부했다. 소방요금 75달러는 물론 불 끄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상황이 거기서 끝났다면 소방대원들의 딜레마는 덜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화재현장에 출동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 집이 위험하다고 느낀 이웃이 화재신고를 했고, 그 이웃은 소방요금을 지불했었다. 소방대원들은 모든 장비를 갖추고 현장에 도착해 이웃집에 불이 붙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바로 눈앞에서 불타고 있는 크래닉의 집에 대해서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크래닉의 모빌홈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뉴스가 보도되자 소방대원들에게 빗발치듯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분개한 것은 미전국의 소방관들이었다. 인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소방관이 소방요금 냈느냐 안냈느냐를 먼저 따진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소방관은 비번일 때도 불을 보면 불을 끌 의무가 있는데, 장비 다 갖춘 대원들이 팔장 끼고 구경만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했다.
이들 소방대원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을까. 당시 그들은 소방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방요금을 지불한 집만 보호하라는 명령이다.
소방요금을 내지 않은 집의 불을 끄는 순간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돈을 내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방서는 운영기금이 없어 문을 닫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도시 전체가 화재에 속수무책이 되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섣부른 동정심은 금물이라는 논리이다.
소속된 기관의 명령과 눈앞의 불길 앞에서 소방대원들은 딜레마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 화재 후 소방대원 여럿이 앓아누웠고, 몇몇은 크래닉 부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시장논리 앞에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대상’일 뿐이다. 8달러짜리 설렁탕집에 가면 8달러짜리 대상이 되고, 수천달러짜리 명품가게에 가면 그만한 돈이 있는 쪽과 없는 쪽으로 나뉠 뿐이다. 사우스 펄튼 소방서의 관점으로 주민은 두 종류이다. 78달러를 낸 부류와 안낸 부류이다.
몇 년전 LA 다운타운의 한 식당이 수십명 무료 식사권을 경품으로 내놓은 적이 있었다. 경품에 당첨된 남성은 무료 식사권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근처 홈리스들을 초청했다. 홈리스들이 떼로 몰려들자 식당측은 당황했다. 무료 식사권으로 식당을 홍보하려는 목적이었는데 홈리스들이 몰려들면 식당 이미지만 망치기 때문이었다. 식당측은 부랴부랴 홈리스에게는 무료 식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당 측도 딜레마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배고픈 ‘사람’으로 보느냐, 비즈니스에 도움 줄 ‘대상’으로 보느냐의 딜레마이다. 소방대원이나 식당 뿐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비슷한 딜레마들을 경험하며, ‘시장’이라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절대로 무너지지 말아야 할 기본은 있다.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 건지게 되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다. 최소한 비상상황에서는 모든 시장 논리를 뒤로 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데서 ‘옳은 일’은 시작된다고 본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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