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서 노인들의 성문제를 다룬 독립영화 ‘죽어도 좋아’가 개봉돼 파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나이가 들면 성욕이 사라지고 그래서 노인들은 중성적인 존재로 변한다는 사회의 통념에 한방을 날렸다. 영화에 등장한 두 노인이 실제로 성적인 행위를 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장면과 묘사가 정작 노인들보다는 젊은 관객들에게 더 큰 충격을 던져줬다는 점이다. 노인들의 성적인 욕구가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은 애써 외면해 온 것을 정면으로 바라 봐야 하는 것처럼 불편한 일이었던 것이다.
노인이 돼도 성적인 욕구는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 의학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되면서 80세 넘어서까지 성을 즐기는 노인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게 됐다. 한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10여년 째 상담을 해 오고 있는 한인타운 다목적 연장자센터의 박창형 이사는 “요즘 노인들은 예전 노인들보다 성적인 자신감이 한층 더 넘쳐난다”며 “성을 주제로 한 대화를 전혀 꺼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간에 정보도 열심히 주고받는 모습을 본다”고 들려준다.
지난주 한국의 ‘노인의 날’을 맞아 발표된 한 노인실태 조사에서 65세 이상 가운데 56%가 성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50% 이상이 주기적으로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수치는 미국 노인들 사이에서 훨씬 더 높아진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의 밑바탕에는 노인들의 의식변화와 함께 성기능 향상제의 보급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노인들의 황혼 외도가 크게 늘어나고 성병 감염률이 높아진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노인들이 ‘하늘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부작용들이다.
노인들의 성은 활발해 지고 있으며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인들은 성을 여전히 조금은 음습한 것으로 여기고 특히 노인들의 성문제는 거론하는 것 자체를 주책없는 일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남아 있다.
미국인들은 한인들보다 노인들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사망한 영화배우 앤소니 퀸은 80이 넘어서까지 20대 여성 여러 명과 사귀고 결혼하면서 아이까지 낳았다. 그의 편력이 화제는 됐지만 손가락질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보는 TV프로그램에까지 발기부전 치료제 광고가 버젓이 등장한다. 바이애그라가 처음 나왔을 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도울이 대변인으로 나서 그 효능을 열심히 설명해도 체면 깎이는 일로 여기지 않았다.
꼬부랑 노인이 돼도 성활동을 컨트롤 하는 호르몬이 한창 때의 80% 정도 남아 있다는 과학적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인들의 성이 존중돼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성은 쾌락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또 노년의 성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역시 새롭지 않다.
그래서 노년의 성은 젊은이들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신체적인 건강과 함께 정서적으로 삶을 지탱시켜 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성생활을 하는 노부모를 모시고 있다면 자식으로서 창피한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로 여겨야 한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한인사회에서 노인 성담론은 아직도 음지에 갇혀 있다. 변변한 실태조사 하나 없는 형편이다. 노인들은 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있는지 주먹구구식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성과 관련해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현명한 해결책을 안내해 주는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노인들의 성과 관련해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이에 발맞춰 이제 한인사회의 성담론도 양성화 할 때가 됐다. 경로를 젊은 세대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노인들 입장에서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흰 눈이 지붕을 덮었다고 집안 벽난로의 불꽃이 꺼지는 것은 아니다. 백발이 성성해도 많은 노인들의 몸과 가슴은 여전히 뜨겁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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