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프강 퍽, 노부 마쯔히사, 토마스 켈러...
미국 최고 요리 향연 ‘아메리칸 와인 앤드 푸드 페스티벌’가봤더니…
지난 9월25일 토요일 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야외 세트장에서 미국 최고의 와인과 음식의 대 향연이 펼쳐졌다. 올해로 28회째를 맞이하는 아메리칸 와인 앤드 푸드 페스티벌(American Wine and Food Festival). 모두가 기억하듯 무시무시한 찜통더위 속에 치러진 이 행사는 미 전국 최고로 꼽히는 50여명의 셰프들이 참석, 3,000명에 달하는 게스트들에게 아름답고 황홀한 음식을 선사했으며, 87개의 와인업체들이 참가해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들의 제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계적인 셰프 울프강 퍽의 자선단체인 퍽-라자로프(Puck-Lazaroff) 파운데이션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 28회째를 맞이한다. 수익금은 LA근교에서만 하루 5,000면 정도의 독거노인, 노숙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 음식을 배달해주는 자선단체인 밀스 온 윌스(Meals on Wheels)를 지원하는데 사용되며 1882년부터 지금까지 2,800만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조성하였다. 요즘처럼 풍족한 시대에 여러 가지 이유로 기본적인 식생활이 여의치 않은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일에 요리계의 스타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앞장서 일하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50명의 탑 셰프들은 그 이름과 레스토랑을 내걸고 크고 작은 부스에서 자신들의 시그니처 디시들을 맛 볼 수 있게 해준다. 오후 5시 울프강 퍽의 요리 시연을 시작으로 6시부터 본격적인 페스티벌이 막을 열었다.
‘마쯔히사’(Matsuhisa)의 노부 마쯔히사가 직접 만들어주는 핸드롤, ‘모짜’(Mozza)의 낸시 실버튼이 튀겨주는 콘 독, ‘컷’(CUT)의 아리 로젠슨이 직접 플레이팅 해준 스테이크와 바로 저며 얹어준 화이트 트러플, ‘캄파닐레’(Campanile)의 마크 필이 구워준 백립과 피치 코블러, ‘부숑’(Bouchon)의 토마스 켈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신선한 굴 등,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풍족하고 황홀한 밤이었다.
미전역의 훌륭한 식당들이 대거 참가하였으므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그리웠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 또한 고맙기 그지없었다. 행사의 가장 중요한 호스트라고 할 수 있는 울프강 퍽의 요리 시연이 끝난 후 인사를 청하니 너무나 반갑게 대해주었고, 한국식당 추천도 부탁하기에 두 곳 정도를 알려주었다. 옆집 아버지 같이 따뜻했던 노부 마쯔히사, 사람들에 둘러싸여 스타의 면모를 보여줬던 토마스 켈러를 만나본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어떤 음식들이 선보였을까?
모든 음식이 다 환상적으로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너무 짜거나 달았던 음식도 있었으며 성의없는 준비로 명성에 건 기대에 비해서는 약간의 실망을 안겨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환경이 아닌 점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음식은 진지하고 훌륭했다.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었던, 힘든 조건에서 정성 기울인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멋진 음식 몇 가지를 꼽아본다.
페스티벌 내에 코트 오브 미라클의 전경. 3,000여명이 참석했다.
요리시범을 보이고 있는 울프강 퍽.
토마스 켈러와 함께 한 이은영 객원기자.
예술적인 맛과 멋“황홀”
■ ‘와인 앤드 푸드 페스티벌’셰프들의 요리
★조 밀러, 조스 레스토랑
(Joe Miller, Joe’s Restaurant)
가스파초를 만들어 치즈 클로스에 부어 떨어지는 맑은 국물(가스파초 워터)로 살얼음 소베를 만들고 신선한 에일룸 토마토를 곁들인 ‘가스파초 소베, 마켓 에일룸 토마토와 비니그렛’. 온갖 신선한 맛이 그대로 농축돼 시원하게 녹아내리는 소베가 정말 훌륭했다.
★폴 리브란트, 콜튼
(Paul Librandt, Corton)
뉴욕에 있는 미슐랭 별 두개를 받은 식당으로 슈림프 칵테일에 두가지 크림형태의 무스를 곁들였는데 아보카도로 만든 것이 아래에 깔려 있었고 위에 맛깔나게 구운 새우를 얹은 후 다시 깔끔하게 매우면서도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는 칵테일 소스 무스를 얹어주었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매콤한 여러 가지 맛이 입안에서 녹아내리고 새우 역시 훌륭한 향기와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컵이었지만 식기가 일회용이 아닌 차이나를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크 퍼거슨, 스파고 베출러 걸치
(Mark Furguson, Bachelor Gulch)
하루 정도 드라이시킨 갈비살에 양념을 발라 또 하루를 지나고 다시 180도 오븐에서 천천히 익혀낸 ‘사케 브레이즈드 콜로라도 쇼트 립스’. 준비과정을 생각해서라도 정성과 시간이 대단히 많이 들어간 요리로 갈비찜만큼 맛있고 부드러워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지노 안젤리니, 안젤리니 오스테리아
(Gino Angelini, Angelini Osteria)
프로슈토와 빵, 펌킨 라비올리, 리조토, 미트볼, 어린 양 갈비구이까지 무려 다섯가지의 메뉴를 준비한 정성이 놀라웠다. 음식은 식당에서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맛 가득한 이탈리아 음식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데이비드 마이어스, 꼼 사
(David Myers, Comme Ca)
밤으로 만든 은은하게 달콤한 크림 위에 오랫동안 익힌 소 꼬리살이 든 아놀로띠가 얹어있고 본 매로우 버터와 튀긴 파슬리로 장식한 완성도가 매우 높은 메뉴였다. 작은 접시이지만 담겨진 여러 가지 재료들이 마술처럼 잘 어우러져 환상적인 고급스러운 맛을 선사했다.
★리처드 레딩턴, 레드
(Richard Reddington, REDD)
나파밸리에 위치한 레드는 이미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레스토랑으로, 바삭거림이 너무나 신선한 미니 사이즈의 하드 셸 타코로 할리벗 세비체와 포크 타코를 맛갈지게 만들어냈다. 먹는 사람들 모두 음~ 소리를 저절로 나게 한, 정겨우면서도 대단히 맛있는 메뉴였다.
★토마스 켈러, 부숑(Thomas Kelle, Bouchon)
비스트로 레스토랑의 기본적 요소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시푸드 바를 거대한 얼음 테이블을 만들어 그대로 옮겨 놓았다. 더운 날씨가 무색하듯 싱싱해서 튀어 오를 듯한 굴, 홍합, 조개, 게 등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미뇨네뜨, 칵테일, 머스터드 소스와 함께 신선하게 맛볼 수 있다. 부숑의 로고가 새겨진 비치볼을 직접 던지고 놀며 나누어 주었다.
★호세 안드레스, 할레오(Jose Andres, JALEO)
스페인의 청정지역 이베리코 반도에서 야생 도토리, 유채꽃, 올리브, 허브 등을 먹으며 자란 돼지의 어깨살 또는 뒷다리 부분을 염장했다가 2년 정도의 건조숙성 기간을 거쳐 만드는 최고의 진미인 하몽 이베리코에 캐비어를 듬뿍 얹어 냈다. 고소하고 진한 하몽의 기름이 입안 가득 퍼지며 캐비어가 톡톡 터져 나와 사치스러운 맛을 선사한다. 파운드 당 100달러가 훌쩍 넘는 고급 하몽 이베리코로 ‘호세의 타코’라는 장난스러운 이름을 붙였다.
★브루스 앤드 에릭 브룸버그, 블루리본 스시 바 앤드 그릴(Bruce & Eric Bromberg, Blue Ribbon Sushi Bar & Grill)
블룸버그 형제의 맨해턴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식당으로 스시, 그릴, 베이커리, 바 등의 9개의 식당을 거느리고 있다. 핸드롤을 맛볼 수 있었는데, 옐로 테일, 새몬, 스파이시 튜나등의 속 재료를 준비해 놓고 원하는 종류를 고르면 금방 만들어 주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한입 베어무는 순간 바삭 부서지는 김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속 재료의 신선함이 생생히 느껴졌다.
★칼 스테미노브, 마리너스 레스토랑
(Cal Stemenov, Marinus Restaurant)
몬트레이 베이의 붉은 전복을 부드러운 질감으로 만들기 위해 수비드(진공 저온 조리)로 조리하였다가 겉을 바삭하게 다시 구워냈다. 사과와 펌킨이 들어간 아놀로띠와 검은 송로버섯 비니그렛을 곁들여 냈는데 숯불향이 풍기는 전복은 겉은 바삭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질감이 훌륭했으며 작지 않은 크기의 전복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새콤달콤한 아놀로띠와 소스도 인상적이었다.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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