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처음 대학에 보낸 부모들에게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다. 아이가 떠난 텅 빈 방이 ‘상실’이고, 새 생활에 취해 집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아이의 무심함이 ‘상실’이고, 아이 뒷바라지로 채워지다가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이 ‘상실’이다.
그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빈 공간을 부모들은 걱정으로 채운다. 아이가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끼니는 제대로 찾아먹고 있는지, 늦잠 자느라 수업을 빼먹는 건 아닌지, 파티에 가서 마약에 손을 대지나 않는지 … 눈앞에 없는 아이를 두고 부모들의 걱정은 끝이 없다.
그러잖아도 걱정 많은 신입생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 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뉴저지, 럿거스 대학에서 일어난 신입생 자살사건이다. 대학에 간 지 몇 주 만에 아들이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니 그 부모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죽은 타일러 클레멘티(18)의 부모는 성명을 통해 “비통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타일러는 일반대학으로 입학했지만 보기 드물게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고 한다. 선한 심성에 예의 바르고 학업에 열심이며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부모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워 할 아들이었다고 한다. 단 하나 좀 다른 면이 있었다면 성적 정체성이었다. 그는 게이였다.
그가 기숙사 방에서 다른 남학생과 섹스 하는 장면을 룸메이트가 웹캠으로 찍어 중계한 사실을 안 후, 그래서 기숙사 내에서 수군수군 루머가 돈 사실을 안 후 그는 허드슨 강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고통에는 비할 수 없지만 동영상 촬영·유포혐의로 기소된 두 학생 부모들의 충격도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타일러의 룸메이트인 대런 라비(18)가 몰래 웹캠을 작동시켰고 같은 기숙사내 여학생, 몰리 웨이(18)의 방에서 두 사람이 같이 섹스 장면을 보며 유포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두 학생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 다 좋은 가정에서 자란 착한 아이들이고 친구 중에 게이들도 있다고 고교 동창들은 전한다. 의도적으로 남을 해칠 아이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경 평범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들뜬 기분에 도가 지나친 장난을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장난’은 세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 한 사람은 죽었고, 두 사람은 징역형을 받게 되었다.
본인의 동의 없이 누드나 섹스 장면을 찍는 행위, 이를 인터넷으로 유포하는 행위는 뉴저지에서 사생활 침해 범죄이다. 최고 5년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뉴저지 동성애 권익옹호 단체들이 이번 사건을 혐오범죄라고 주장, 혐오범죄로 간주되면 최고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대학에 갓 입학해 앞날이 창창한 아이가 감옥에 가게 되었으니 부모에게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다.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까지 겹쳐지면서 이들 부모는 지금 지옥을 사는 기분일 것이다. 대학 신입생 자녀를 둔 부모들 누구도 “남의 일이다”고 고개 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으로 못하는 게 없는 아이들이, 장난기가 발동해서 잠깐 판단력을 잃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은 ‘커밍아웃’의 해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무서워서, 부모의 보살핌 덕분에 드러내지 않던 내면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기간이다.
집 떠나서 누구의 감독,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보는 첫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위태롭다.
부모에 등 떠밀려 학교 가고 학원 가던 아이들은 1학년 때 대개 성적이 엉망이다. 수동적으로 살아와서 스스로 시간 관리하며 학업에 전념할 능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너무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중압감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종종 폭음과 파티에 빠져든다. 속으로 눌러뒀던 욕구들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성애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도 대개 이 때이다. 한인부모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이다. 기숙사 방안에서의 섹스는 더더욱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학 1학년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이 넘치는 자유를 주체 못하는 불안정한 기간이다. 부모들의 걱정은 근거가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은 자녀가 온전히 그 자신으로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연습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부모는 시행착오가 너무 가혹하지 않도록 기도를 할 뿐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것, 아이가 힘들 때면 언제든 다가와 안길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놓을 것 - 대학 1학년 부모들의 기본수칙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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