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몬태나, 그레이트 폴스의 한 은행이 수익률 높은 5년 만기 CD상품을 새로 내놓았을 때였다. 한 노신사가 와서 그 상품을 사겠다고 하자 은행 직원들은 당황했다. “5년짜리 대신 2년짜리를 구입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정중하게 만류했다.
이유는 ‘기대수명’ 때문이었다. 당시 노인의 나이가 자그마치 100세였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를 노인이 5년짜리 CD라니 … 은행 직원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노인은 단호했다. “5년짜리를 사서 만기가 되면 내가 직접 와서 돈을 타가겠다"고 했고 5년 후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다시 9년이 지난 지금 노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며칠 전 114세 생일잔치를 한 월터 브루닝의 이야기이다.
1896년 9월21일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브루닝은 현재 공인된 세계 최고령 남성이다. 사실 ‘최고령’은 기록으로 의미가 있을 뿐 보기에 안쓰러울 때가 많다. 보통 너무 노쇠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렇게 오래 사는 게 복일까, 벌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브루닝은 여전히 깔끔한 신사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반듯하게 정장을 하고 새 날을 맞는다고 한다. 눈이 침침해져 책을 읽는 대신 라디오를 듣고 다리 힘이 약해져 모터스쿠터를 타고 다니기는 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고, 기억력은 예리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던 집에서 살던 유년기의 추억, 그때 할아버지에게서 듣던 전쟁 이야기를 생생히 기억한다.‘전쟁’이란 남북전쟁을 말한다.
이번 114번째 생일을 앞두고 한 인터뷰, 생일파티 석상에서의 연설 장면들을 보면 그는 잘해야 90살 정도 된 정정한 노인의 모습이다.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피부는 깨끗하고 자세도 반듯하다. 보통사람들은 감히 도달할 수 없는 탁월한 경지의 인물들을 ‘아웃라이어’라고 한다면 그는 ‘오래 살기’ 범주에서 아웃라이어임에 분명하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80-90대를 사는 것과 100세를 넘어서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초고령자를 ‘유전적 로토 당첨자’라고 부른다. 건강관리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 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학술지 사이언스는 100세 이상 초고령자들에게 유전인자 상의 공통점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보스턴 대학 연구진이 1890년부터 1910년 사이에 태어난 백인 1,055명과 그 이후 태어난 1,267명을 대상으로 게놈 분석을 한 결과였다. 확연한 공통점 덕분에 연구진은 77%의 정확도로 100 이상 초고령자를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100세 이상 장수에는 유전적 요인이 필요조건이라는 말이 된다. 충분조건은 물론 건강한 생활습관이다.
그렇다면 100세 이상 장수 가능성을 미리 알 방법은 없을까? 80세 때의 건강상태를 보라고 뉴잉글랜드 100세 고령자 연구소의 토마스 펄스 소장은 말한다. 그가 초고령자들을 많이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이들은 80세 때 대단히 건강했다. 동년배 친구들은 체력이나 몸의 기능이 자꾸 떨어지는 데 이들은 활력이 넘쳤다. 타고난 수명이 110세, 120세라면 80세는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루닝은 그 나이에 식당 겸 클럽 매니저로 일을 했다. 철도회사 사무직원으로 50여년 일한 후 66세에 은퇴하고 곧 이어 매니저로 취직해 99세까지 현역으로 일했다. 현재까지 최고령자로 기록된 프랑스의 잔느 칼망은 100살까지 오페라 구경을 다니고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수영과 테니스를 즐겼다. 지난 97년 122살로 세상을 떠나기 5년 전까지도 담배를 피우고 초컬릿을 즐겨 먹었다.
지난해 113세로 사망하면서 ‘최고령 남성’ 타이틀을 브루닝에게 물려준 영국인 헨리 알링햄 역시 평생 술과 담배를 즐겼다. “담배와 위스키, 멋진 여자들, 그리고 유머감각"이 장수비결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스코틀랜드의 최고령자인 109세의 여성은 “담배도 술도 입에 대지 않는 단순한 생활.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자신의 장수비결로 꼽는다.
삶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낙천적으로 삶을 즐겼다는 것이다. 브루닝은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고 말한다. 장수비결을 묻는 많은 이들에게 하루하루를 ‘좋은 날’로 맞고 그렇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 좋은 세상에 미움이 넘친다. 서로에게 따뜻하게 대하라"고 충고한다. 오래 잘 살려면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지 않고 100살, 110살을 산다면 그건 지옥일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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