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정부 입장과 이 사업이 초래할 ‘환경재앙’의 위험을 소리 높여 외치는 반대진영의 주장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4대강 사업의 당위성 논쟁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사업이 지나치게 졸속으로 서둘러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은 비켜가기 힘들어 보인다.
국가의 백년대계라 일컬어지는 사업이라면 충분한 토론을 거쳐 타당성을 철저히 살펴보고 예산과 설계 등 기본적인 작업을 마무리한 후 착수하는 것이 순리다. 특히 이 사업이 환경과 관련된 것이라면 꼼꼼한 환경영향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조그만 시설물 하나 만드는데도 오랜 기간 환경조사가 필요한 법인데 수십조원을 들여 강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는 사업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런 정석과 순리가 무시되고 있다.
예산은 당초 추정치를 훨씬 벗어나 풍선처럼 불어나고 설계와 공사가 병행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완전 속도전 양상이다. 국토의 생명줄인 강줄기를 바꾸는 일은 한번 손대고 나면 다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중차대한 대역사를 마치 촬영장에서 쪽 대본 받아 드라마 찍듯 추진해 나가고 있다. 한손으로는 책 읽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를 모는 운전자를 보는 것처럼 마음 졸이게 만든다.
4대강 사업 논란에 외국 언론들도 깊은 관심을 나타낸다. 지난 달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는 장문의 현지 취재기사를 통해 이 논란을 다뤘다. 한국 내 여론추이와 찬반론자들의 주장을 실은 이 기사는 MB에 대해 “과거 건설회사 사장으로 있었으며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하면 된다’는 방식으로 건설사업에 접근했다”며 “4대강 사업은 대통령이 각별히 아끼는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바로 이 문장 속에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이 응축돼 있다. MB는 토목사업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구축해 온 인물이다. 건설사 CEO 출신이라는 후광과 서울시장 재직 시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정치적인 자산을 쌓았다. 대통령은 전혀 다른 자질을 요구하는 자리인데도 그는 자신에게 명성과 정치적 자산을 안겨줬던 과거의 성공 기억에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MB는 ‘CEO형 대통령’이라는 담론을 만들어 내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CEO은 작은 왕국의 영주다. 속도와 효율을 앞세운 전횡이 가능한 자리다. 그러나 대통령은 ‘president’라는 말의 어원이 말하고 있듯이 중재하고 조정하는 자리다.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조정하고 균형을 잡도록 해 줘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기업을 이끌 듯 자기 독단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무조건 따라 오라는 식으로 강요해서는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철학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언어나 행동의 조합을 ‘수행 모순’이라고 부른다. ‘CEO형 대통령’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이런 수행 모순이 담겨 있다. CEO는 CEO처럼 기업을 이끌고 대통령은 대통령처럼 일을 해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자리를 놓고 민주당 제리 브라운과 공화당 멕 휘트먼 후보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휘트먼은 선거 전략을 이베이라는 성공적인 IT기업을 이끈 CEO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두고 있다.
미디어 광고를 보면 “직원이 달랑 30명이던 기업을 1만5,000명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며 일자리 창출에 자신이 적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CEO형 주지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휘트먼의 담론은 MB가 재미를 봤듯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유권자들에게 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지사로서 당선되는 일과 주지사로서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기업인이 정치인으로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역할에 맞는 가치관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수행 모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CEO는 CEO다워야 하고 주지사는 주지사다워야 하며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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