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다. 미국의 실패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 중 하나로 북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오류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을 지배하고 있던 사고는 냉전논리였다. 이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잣대는 자본주의냐 아니면 공산주의냐는 구분뿐이었다. 당연히 호치민은 공산주의라는 독을 퍼뜨리려는 악의 세력으로 분류됐으며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군사적인 개입을 시작해 오랜 기간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호치민은 공산주의자였지만 동시에 민족주의자였다. 흑백논리에 갇혀 있던 미국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호치민의 민족주의는 베트남 국민들의 정서에 어필하는 요소가 강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물리력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전쟁을 지휘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훗날 자서전에서 당시 핵심 정책가들이 베트남 전쟁을 오판했음을 인정했다. 무엇보다도 호치민의 민족주의적인 측면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잘못된 전략에 의존하는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맥나마라의 실패를 빗대 이러한 인지적 실수를 흔히 ‘맥나마라 오류’라고 부른다.
똑똑한 개인과 집단들이 상황을 여러 관점에서 보지 못한 채 평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전쟁은 종종 이런 인지함정에 빠진 지도자들에 의해 일어나고 진행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7년5개월 전 부시에 의해 시작돼 천문학적 액수의 전비와 함께 무수한 희생자를 낸 이라크 전쟁은 8월31일자로 미 전투 병력이 이라크에서 완전 철군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전쟁종료를 선언함으로써 일단락 됐다. 이라크 전쟁은 ‘인지함정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못된 판단과 고집으로 점철된 일그러진 전쟁이었다.
동기부터 불순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테러연루와 대량학살무기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아예 없거나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시는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 연방의회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편이 될 지, 아니면 테러리스트의 편이 될지를.” 전형적인 인지함정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세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고 다른 선택의 여지를 없게 만든 것이다.
부시에게는 테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달래주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 줄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 대상으로 이라크를 선택했다.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감도 작용했다. 일단 상대를 정한 후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 2001년부터 2003년 사이 이라크가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정부의 입장표명이 무려 900회 이상에 달했다. 무리하게 명분을 찾다보니 해프닝도 있었다. 콜린 파월이 이라크의 화학무기 증거로 유엔에 제시한 한 공장 주변의 차량들은 제독용 특수차량이라는 파월의 주장과 달리 일반 소방차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내세웠던 명분이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미국은 전쟁에서 발을 빼지 못한 채 확전에 휘말렸다. 이런 태도는 노출불안을 보여준다. 노출불안은 상대가 나를 약하게 보지 않을까 우려해 필요 이상으로 강한 척 하는 태도이다. 마초적인 남성들이 지나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은 이런 불안심리 때문이다. 어려서 부모에 의해 무시당한 사람들 사이에 많이 형성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모의 인정을 갈구했던 부시의 성장기를 투영시켜 보면 이라크 전쟁의 숨은 배경이 어느 정도 읽혀진다.
맥나마라는 생애 말년에 출연한 한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며 지난 실수들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회한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결과적으로 과거 베트남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실수를 되풀이 했다. 4,400여 젊은이들이 이라크 땅에 뿌린 피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전쟁이 안겨준 혹독하면서도 값비싼 교훈을 미국의 장래를 위한 자산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 인식이 취약한 지도자는 인지함정에 쉽게 빠진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뽑았을 때 국민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라크 전쟁은 웅변해 주고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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