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쑥은 복통에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에게 친근한 식용식물들 중 약으로도 효능이 있는 것들을 자연시간에 공부했다.‘공부’했다기보다는 외웠다.
그때 참고서를 펴놓고 달달 외우던 내게 엄마가 물으셨다 - “복통이 뭔지 아니?"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복통’이 무엇인지 몰랐고 알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시험에 “쑥의 효능은?" 하고 나오면 ‘복통’이라고 쓰면 그만이었다. 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상관이 없었다. 사지선다형 입시위주 교육에서 ‘공부’는 곧 ‘암기’였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혀 다른 ‘공부’를 경험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쑥의 효능을 다룬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여러 식용식물들을 채집하거나 집에서 가져오게 했을 것이다. 그 식물들을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씹어서 맛을 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걸 약으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한 두가지는 직접 만들어보기도 할 것이다.
전자의 주입식 교육이나 후자의 산교육이나 학력고사로 치면 한 문제감이다. “쑥은 복통에 좋다"고 5분 ‘암기’하나 수업시간을 몇 시간씩 할애해 깊이 있게 ‘공부’하나 얻어질 점수는 같다. 그렇다면 후자는 비능률적인 학습일까?
새 학년 개학을 앞두고 남가주에서는 “어떤 교사가 실력 있는 교사인가"를 놓고 격앙된 설전이 오가고 있다. 2주전 LA 타임스가 랜드 연구진에 의뢰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사라는 보도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
신문은 LA 통합교육구 3, 4, 5학년 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학력고사 성적을 7년간 추적한 결과 학생들의 성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변수는 교사라고 보도했다. 어떤 부모, 어떤 학교, 어떤 동네보다도 어떤 담임을 만나느냐가 학생들의 실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학습 지도력이 뛰어난 상위 10% 교사에게 1년을 배우면 하위 10% 교사에게 배운 학생보다 평균 영어 17%포인트, 수학 24% 포인트 점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LA 타임스는 이런 사실을 부모가 알아야 한다며 조사대상이 된 6,000여명 교사들의 실력 평가결과를 이달 말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사노조는 LA 타임스 불매운동까지 선언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효율성은 학생의 시험성적 하나로 평가될 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연방교육부와 주 교육국은 교사의 실력을 학생의 시험성적과 연계해 평가하고 그 자료를 공개하는 데 찬성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교수법이 효과적인지 파악하고, 실력보완이 필요한 교사들을 훈련시킴으로써 교육의 질을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교사가 잘 가르치면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실력이 좋아지면 학력고사 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학부모, 학생 누구도 공부에 관심이 없는 그래서 교사들도 열의가 없는 소위 3류 학교들이 좋은 예가 된다. 이런 학교에 어느 날 사명감 넘치는 교사가 부임하면서 학생들의 학업태도와 성적이 확 바뀐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학생의 학업성취도는 100% 교사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소위 우수 학군, 학력고사 평균 성적이 상위권인 학교들의 경우는 다르다고 본다. 대부분의 한인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들이다. 이런 학교에서 영어 수학 점수 몇점 차이로 교사의 실력을 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3가 초등학교의 한 베테랑 교사는 이번 LA타임스 평가에서 하위 10% 평가를 받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그 반에서 공부했던 학생 부모들이 줄줄이 LA 타임스에 항의편지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경험한 바로 그 교사는 아이들의 정서교육과 창의성 계발에 중점을 두는 훌륭한 교사라는 것이다.
3가 초등학교는 학력고사 평균성적이 높기로 유명한 학교이다. 그래서 한인부모들은 ‘위장전입’도 불사하지만 타인종 학부모들은 오히려 그 점을 걱정한다고 수지 오 교장은 전했다. 너무 영어 수학에 치중해 미술, 체육 등을 포함하는 전인교육에 소홀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
교육이 너무 ‘점수’에 쏠리면 “쑥은 복통에 …"하며 달달 외우는 공부가 되고 만다. 그런 공부로는 제2의 빌 게이츠나 스티븐 스필버그를 기대할 수 없다. 창의력, 소통능력, 리더십 등 21세기에 필요한 자질들은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다. 한인부모들이 너무 ‘점수’에 연연하지 말았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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