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의들이 너무 다양해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보수라는 말의 뜻을 중심으로 해 본다면 전통과 법질서, 애국을 중시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이런 보수의 가치를 지켜 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 도덕성이다.
미국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는 대표적 보수주의자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그는 평생 공화당 한길을 걸어왔다. 그는 보수주의자답게 도덕의 붕괴를 개탄하고, 연민을 결여한 극우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진보주의가 지배하는 할리웃에서 이스트우드가 존경 받는 것은 말과 행동으로, 또 영화를 통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그가 직접 감독하고 주연을 해 평단과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그랜 토리노’는 이런 영화들 가운데 하나다. 주인공 월트는 한국전 참전용사로 고집불통 노인이다. 그의 고집은 나름의 원칙주의이며 자존심이다. 이웃에 이사 온 라오스 몽족 가족을 못마땅해 하던 그는 그 집 아이들과 교유하면서 점차 깊은 연대감을 갖게 되고 마지막에는 갱단의 위협을 받는 아이를 자기의 목숨을 던져 보호한다. 지켜야 할 것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한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중심 추 역할을 하는 진중하고 점잖은 어떤 것이라는, 이스트우드 같은 이미지로 다가와야 하는 게 보수주의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주의를 논할 때는 선뜻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최근 개각을 통해 요직에 임명된 인사들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런 인사들로 보수의 가치를 구현해 나가겠다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몇 차례의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투기에 각종 표절 의혹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비상식적으로 높은 병역면제율 등 집권층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보수의 핵심적 가치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명분과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눈에 이런 것들이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려온다. 그래서 권력층 상부의 청정도가 중요한 것이다. 몇 년 전 수차례 위장전입을 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걱정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그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흠결은 외면하면서 각료만 탓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자 이혜경 교수가 쓴 ‘진정한 보수주의자 맹자를 읽다’를 보면 맹자가 위나라의 양혜왕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어른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 “왕은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은 인과 의일 뿐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면 그 아래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고 선비와 서민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합니다. 그러니 왕은 인의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맹자는 도덕이 실리에 앞선다는 것을 강조했다. 요즘말로 하면 도덕성을 결여한 실용주의가 지닌 위험을 경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도덕과 규범 역시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맹자의 지적에 비춰볼 때 한국의 보수주의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도덕적 일탈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대한민국을 진단한 컨설팅 보고서라 해도 무방하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처럼 소중한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만들어 놓은 법만이라도 잘 지키는 최소한의 모습은 보여야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할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뜬금없이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던졌다.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다. 이 혐의로 매년 수백명이 처벌받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죄를 밥 먹듯 저질러 온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공정한 사회는 아무런 설득력 없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지금의 정권은 지난 두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보수주의 기치를 내걸어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실제로는 다른 곳에 살면서 ‘보수동’에 사는 것처럼 신고한 위장전입 정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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