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coup d’etat)란 말은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이 쿠데타는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가 그 전유물인 것처럼 한 때 생각됐었다. 볼리비아는 독립 185년의 역사에서 200번이상의 군사정변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군사정변으로 지고 샌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쿠데타가 특히 빈발했던 시기는 냉전시대다. 1950년부터 1990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100번 이상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90년대 이후 쿠데타 발생건수는 크게 줄어 2005년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8번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쿠데타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색다른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군부의 영향력은 적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과거에 비해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것이다.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이지 킹메이커로서 군은 이들 나라에서 여전히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린 릴레이션 카운슬의 셸비 리튼의 주장으로, 형태를 달리한 이 같은 군부의 정치 개입은 제 3세계에서 흔히 목도되는 현상으로 인권신장과 민주화에 역행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멕시코를 그 한 케이스로 들었다. 지난 20년간 멕시코는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혀왔다. 제도혁명당 1당 지배체제가 종식되면서. 그 사이에 은연중 강화되어온 게 군부의 파워다. 이와 함께 멕시코의 정치시스템은 뒷걸음을 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마약전쟁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마약 카르텔과 전면전이 벌어졌다. 경찰병력만으로는 힘이 부친다. 그래서 끌어들인 것이 군이다. 이 과정에서 15만에 불과했던 군 병력은 26만으로 불었다. 군의 권한도 커졌다. 멕시코의 상당 지역에서 군은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동시에 부작용의 보고가 늘고 있다. 마약전쟁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고문에서, 재판 없는 처형 등 군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탄압사례가 날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멕시코뿐이 아니다. 타일랜드. 페루. 파키스탄 등 여기저기에서 목도되는 현상이다.
민주화 후퇴만이 아니다. 고립화를 초래해 경제를 황폐화 시킨다. 형태를 달리한 군의 정치 개입이 불러오는 또 다른 부작용이다. 타일랜드가 그 케이스다. 타일랜드의 경제는 오랜 내전을 겪은 공산체제 베트남에도 뒤져 있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 아니다. ‘군부의 그늘이 날로 짙어지고 있다’-. 수령절대재주의 체제가 운명(殞命)을 앞두고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고 할까. 이런 정황에 처한 북한과 관련해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가 이 같은 ‘군부 부상론’이어서다.
누가 ‘천안함’을 폭침시켰나. 5개월이 지난 현재 군부 소행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권력승계와 관련해 장성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김정일이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적지 않은 북한의 고위층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김일철에서 리제강에 이르기까지. 왜. 역시 권력승계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정설이다. 권력승계 지지, 다시 망해 김정은 지지세력 중심으로 북한의 권력, 특히 군부의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뿐이 아니다. 왜 북한은 개혁개방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이제 와서 그 설명은 역시 군부 때문으로 귀결된다. 개혁개방은 군부가 그동안 누려오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군부는 요지부동,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군부가 김정일 사후에는 전면에 부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대다수 관측통들의 전망이다. 이 경우 형식적인 지도자는 김정은이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예상되는 것이 일종의 라틴 아메리카 형의 군사평의회식 집단지도체제다.
군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는 그러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것인가.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점쳐지는 가능성은 미얀마 스타일의 통치체제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 장성들이 권력에서 부에 이르기 까지 모두를 독점하는 그런 통치 방식 말이다.
또 다른 최악의 시나리오는 권력집단, 무력집단끼리의 충돌이다. 김정일 체제 관리에 중국은 그동안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 김정일 사후가 그래서 적기다. 그 틈을 타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이끌려 든다. 상황에 따라서는 친중파 무력집단을 지원하면서까지.
선군정책을 고수하려는 군부 강경세력이 이럴 때 과연 순응을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내란이다. 60년 전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제2의 한국전쟁 발발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군의 전면부상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재차 던져보는 질문이다. 아무래도 불길한 생각이 앞선다. ‘선군’(先君)이라는 이름하에 수백만의 북한 주민을 굶겨 죽인 장본 세력이 김정일이고 그 체제를 수호해온 집단이 군부이기 때문이다.
옥 세 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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