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의 모욕적 언행에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비상탈출 해버린 비행기 승무원이 ‘영웅’이 되었다. “그 심정 백번 이해된다. 나는 꾹 참고 못하는 걸 당신은 해냈으니 당신은 나의 영웅!”이라며 환호하는 팬들로 온라인 세계가 시끌시끌하다.
남가주, 사우전옥스 출신의 제트블루 승무원 스티븐 슬레이터(38)에게 지난 9일은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피츠버그 발 뉴욕 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이미 한차례 ‘사고’가 있었다. 머리 위 짐칸을 서로 차지하려는 두 승객을 중재하려다 그중 한 여성이 쾅하고 짐칸 뚜껑을 닫는 바람에 그는 이마에 상처를 입었었다.
그리고는 JFK 공항에 착륙하면서 ‘사건’이 터졌다. 비행기가 게이트로 이동 중 한 여성이 일어나 짐칸에서 가방을 꺼내기 시작했다. 슬레이터가 다가가 착석을 당부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실랑이 중 가방에 머리를 받힌 그는 사과를 요구했다. 여성은 사과 대신 욕설을 퍼부었다.
슬레이터는 기내 인터콤으로 가서 그 여성에게 욕을 하고 “20년 해온 이 일, 이제는 끝”이라고 선언한 후 맥주 캔을 집어 들고 비상탈출 미끄럼 장치로 ‘탈출’해 버렸다. 그날 아침까지도 상상도 못했을 그 행동으로 그는 두 가지를 얻었다. 중과실치상 등 혐의로 인한 기소 그리고 ‘팔자에도 없는’ 인기이다. 그의 재판비용을 모금한다는 사이트, 그를 찬양하는 노래, 그를 지지하는 T-셔츠 등이 요란스럽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근무 도중 분을 못 참고 무책임하게 근무지를 이탈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봉급이라는 생명줄을 놓지 못해 꾹꾹 참고 사는 사람들이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의 돌출 행동에 누구보다 박수를 보내는 집단은 같은 직업 종사자들. 9.11 테러로 보안검색이 강화되고 불경기로 항공사들이 경비절감에 나서면서 비행기는 더 이상 ‘날아다니는 궁전’이 아니다. 특히 국내선의 경우 승무원들은 쓰레기 수거까지 직접 하는 격무와 길어진 근무시간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승객들 역시 기내식은 물론 수하물 부치는 데도 따로 돈을 내고 ‘만원버스’처럼 빽빽하게 채운 기내에서 신경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롭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승무원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승객들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안전지침을 무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승무원에게 욕을 하고, 물건을 내던지는 등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부터 욕을 했을까? 가만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던졌을까? ‘태초에’ 어떤 무례함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승객의 무례함에 화가 치민 승무원이 다른 승객을 퉁명스럽게 대하고 그래서 기분이 상한 승객이 화를 내고, 불손한 말이 오가다 욕설이 나오고 물건이 날아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무례함’이 미국 사회의 큰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관련 조사마다 미국 사회가 예의를 잃어버렸다는 응답이 70-80%에 달한다. 20-30년 전만 해도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풍토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고 바쁜 삶의 환경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남을 돌아보고 양보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적되는 것은 가정교육의 부재이다. “네가 최고다!”며 아이들 기 살리는 데만 치중하느라 기본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길에도, 식당에도, 직장에도 불손하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이다.
무례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 무례가 무례를 낳고, 그 무례가 짜증을 낳고, 짜증이 분노를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불쾌감은 바이러스처럼 번진다. 퇴근길에 내 차를 새치기한 무례한 운전자는 점심 때 내 가족의 무례한 행동으로 열 받은 식당 웨이터일 수도 있다.
저마다 무례함을 탄산가스처럼 뿜어낸다면 결국은 모두가 불쾌감으로 질식하고 만다. 무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탄산가스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뿜어주는 나무 같은 행동이 필요하다. 친절과 배려이다. “무례한 사람에게도 친절 하라. 그들이 잘 나서가 아니라 당신이 잘 났으니까”라는 말을 기억하자.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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