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올 여름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만 해도 무비자 특수를 기대하고 있던 미주 한인 관광업소와 호텔들은 한국 손님 방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감을 맛봐야 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주요 원인이었지만 신종플루 공포도 한몫 했다. 미국 발 신종플루 기사들이 이어지면서 감염을 두려워한 한국인들의 미국여행 취소가 이어졌던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시의 신종플루 공포는 조금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신종플루 사망자에 관한 언론 보도들이 경주식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신종플루가 유행성 독감보다 치명적이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질병임이 밝혀지면서 이런 공포는 풍선 바람 빠지듯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공포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 사태가 신종플루 대유행을 선포한 세계보건기구와 대형 제약회사들이 결탁한 초대형 스캔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약회사들이 백신과 치료약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공포를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결탁의 진위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이 사태로 제약회사들이 큰돈을 번 것만은 사실이다.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이른바 ‘겁주기 마케팅’과 관련해 가장 빈번히 입에 오르는 것은 제약업계다. 진짜 환자만 가지고는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까지 환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을 향한 비판의 요지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 일으켜 약을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껌처럼 약을 먹는 사회를 꿈꾼다.” 다국적 제약업체인 머크사의 회장이 오래 전 했다는 이 말속에서 제약업계의 의도가 읽혀지는 것 같다.
최근 신경과학을 결합한 새로운 마케팅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 기능성 MRI로 뇌를 촬영해 보면 소비자들은 공포를 자극하는 광고에 가장 강력히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본능은 생존이고 공포의 감정은 생존율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공포자극은 그만큼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그러니 이런 마케팅이 날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샌타모니카에 소재한 몇몇 금화 판매회사들이 현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보수진영의 간판 방송인인 글렌 벡이 폭스TV에서 한 발언들을 이용해 고객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금화를 팔아온 혐의다. 벡은 1933년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수집용 금화를 제외한 민간인 소유 금을 강제로 매집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며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런 사태에 대비하라고 촉구했다.
그의 발언은 사실관계가 정확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금 판매회사들은 이 발언을 인용해 고객들에게 “정부에 뺏길 염려가 없는 금화를 사라”고 유도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금화에 집중하는 것은 높은 마진 때문이다. 금괴는 마진율이 5%인데 반해 금화는 35%나 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금화 판매회사들과 벡의 유착관계다. 이들은 벡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의 주요 광고주들이다. 벡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그가 무책임하게 뱉어 낸 발언들을 마케팅에 교묘하게 이용해 온 것이다. 물질적 이득을 노리는 탐욕과 무책임한 언론이 결합된 나쁜 조합의 사례이다.
난무하는 광고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아마도 건강과 재난, 은퇴 등 다양한 상황들과 관련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가득할 것이다. 상품광고뿐 아니라 정치광고도 요즘은 이런 마케팅이 대세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캠페인 광고들을 보면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이러저러한 나쁜 일들이 생길 것이라는 겁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겁주기 마케팅’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것들을 접하면서 갖게 되는 공포와 두려움에는 실제 위험보다 한껏 부풀려진 거품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수준의 공포는 미래의 재난과 피해에 대비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감정이지만 너무 지나치면 그것 자체가 재난이 돼 버린다.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위해서는 이런 마케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얇은 지갑이 더 얇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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