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글라스 이 ‘리 앤 사카하라 건축 설계회사’ 대표
애나하임리조트·미미스카페·아일랜드버거 등
31년동안 호텔 1백개·레스토랑 3백개 디자인
어바인 소재 ‘리 앤 사카하라 건축설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더글라스 이(69) 대표는 미 전국 굴지의 호텔, 오피스 빌딩, 골프 컨트리클럽을 디자인하는 등 주류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더글라스 이 대표는 지난 31년간 100여개의 호텔(1만5,000호텔룸), 300여개의 레스토랑, 1,500만스퀘어피트 오피스 공간을 디자인했다. 이 중에는 ‘리비에라 컨트리클럽’(PGA 닛산 오픈), ‘라퀸타 컨트리클럽’(LPGA), 뉴포트비치 ‘페어몬트 호텔’, 뉴포트 비치 ‘발보아 베이클럽’ ‘애나하임 리조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 이 대표의 손을 거쳐 간 작품(그는 건축물 하나하나를 작품으로 여긴다)은 LA 공항 주차장, 한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부에나팍 ‘로스 코요테스 컨트리클럽’, 미전국 체인 레스토랑 ‘미미스 카페’ ‘아일랜드 버거’ 등 수두룩하다.
이 대표는 건물 하나하나를 지을 때마다 예술적인 요소를 반드시 가미하고 있다. 건물은 그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이 대표의 건축정신은 20세기 현대건축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안 아메리칸 건축가 파울로 솔레리로부터 받았다. 솔레리의 제자였던 그는 “1966년 솔레리와의 만남이 나에게는 획기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며 “대학 졸업 후 그의 밑으로 들어가 3개월간 무보수로 일했고 이후 수년간 그와 함께 하며 장인정신, 수공예 기법, 친환경 정신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솔레리는 건축가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로부터 건축이 단순 건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며 “그의 친환경 정신은 오늘날에 와서야 세계가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이 대표는 솔레리와 함께 애리조나주 프레스캇에 위치한 친환경 도시 ‘아르코산티’(Arcosanti) 건축작업에 참여했다. 자연 환경과 상생하는 친환경 도시인 아르코산티 건축을 통해 그가 배운 것은 건물의 친환경적 요소이다.
이 대표는 “당시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해야 했고 나와 우리 팀은 자체 내에서 공구를 개발하기도 했다”며 “이러한 친환경적 요소가 훗날 나의 건축설계 작업에 많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91세인 솔레리와도 현재 자주 연락하며 건축철학에 관한 상담을 나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이 대표는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 사용을 마다한다. 손에서 나오는 장인정신을 건축설계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해 직원들이 억지로라도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며 노트북 컴퓨터를 사줬다”며 “그러나 그것도 1년이 지난 얼마 전에야 오픈했다. 손작업이 훨씬 편하고 지금도 그렇게 수작업만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 대표와 20여명의 설계사로 구성되어 있는 그의 팀은 에스칸디도 매리엇 호텔, 미 전국에 펼쳐져 있는 공군기지 내 호텔, 뉴포트 컨트리클럽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미국 사회가 성실함과 장인정신을 인정해 주었던 것 같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인, 특히 청년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다. 나는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렇기에 꿈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추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신이 건축 설계한 작품 사진들 앞에선 더글라스 이 대표.
51년 10세 때 이민… ‘설계 명장’으로 우뚝
더글라스 이 대표는
이북 함경남도 원산 태생인 그는 10세 때 한국전 당시인 1951년 아버지 고 이기준 목사를 따라 초창기 한인 이민자 농부 밀집거주 지역인 중가주 프레즈노 인근 디누바로 왔다.
이후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LA 지역에서 보냈지만 가족이 중가주 핸포드로 이사, 핸포드 유니온 고교를 졸업했다. 1965년 칼폴리 샌루이스 오비스포 대학(건축설계학)을 졸업하고 1966년 애리조나에서 파블로 솔레리 밑에서 일하며 그에게서 건축 철학을 배웠다.
18개월 동안 솔레리 밑에서 일한 후 일본 굴지의 ‘퍼시픽 건축 엔지지어’사에 입사해 당시 한국 서울의 광화문 종합청사 설계작업에 참여했고 1968년에는 인천 부두 시스템(Inner Harbor Lock System)을 설계하기도 했다.
테헤란 현지 호텔을 건축 설계하던 중 일어난 이란혁명으로 인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해 칼폴리 샌루이스 오비스포 대학 4년 후배인 론 사카하라와 함께 코스타메사에서 현재의 ‘리 앤 사카하라’ 건축설계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1960년대 일본 근무시절 시호코씨를 만나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소냐(35)씨는 뉴욕에서 피아니스트로, 차남 브라이언씨는 전문 요리사를 준비 중이다.
그의 설계로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뉴포트비치 페어몬트 호텔.
<이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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