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결정한 3차 G20 정상회의가 열린 곳과 지난 달 4차 G20 정상회의가 열린 곳을 알고 있는가. 답은 피츠버그와 토론토이다.
만약 정답을 떠올렸다면 G20 정상회의에서 대단한 성과가 나왔거나 뜨거운 관심을 모은 이벤트여서가 아니라 아마도 피츠버그는 한국과 관련된 회의였기에, 또 토론토는 불과 한 달 전 열린 행사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1차와 2차 회의가 열렸던 장소는 모를 테니 말이다.
G20 정상회의는 20개국 정상들이 모여 공통의 아젠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입장을 조율하는 회의다. 정상들이 머리를 맞댄다는 데 큰 의미는 있지만 1박2일의 짧은 일정이 말해 주듯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회의의 성과보다는 오히려 행사 자체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더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어쨌든 한국이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였던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와 일부 언론들이 “올림픽 유치에 버금가는 쾌거”라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 것은 보기에 민망한 일이었다. 개최 결정이 나온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세삼창까지 했다는 소식에 또 오버하는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개최일이 다가오면서 그런 우려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정상회의의 호스트로서 먼 길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각국 정상들과 언론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안겨주면서 안전하게 회담이 끝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며 책무다. 그런데 정상회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힘없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인권을 가벼이 여기는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테러 예방을 빌미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늘리고 노점상,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 층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그 중 하나다. 행여 이들의 존재가 서울의 경관을 해쳐 다른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안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 짧은 회의기간에 외국손님들이 얼마나 서울의 구석구석을 살펴볼지 의문일 뿐더러 설사 그렇다 해도 그런 이유로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은 적당히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G20 정상회의를 정권치적 홍보에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는 욕구는 십분 이해하지만 얼마나 여기에 매몰됐으면 정치적 행사에 김연아, 박지성 같은 스포츠 스타들과 연예인들까지 홍보대사로 내세우고 있을까 싶다. 과문한 탓인지 피츠버그나 토론토 G20 정상회의 홍보를 위해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이 나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다른 나라, 특히 선진국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보려는 것은 자긍심이 높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과공은 대부분 이런 의식의 발로라고 보면 틀림없다.
캐나다에서 몇 년간 연수했던 한 언론인은 퀘벡의 신호등 얘기를 들려준다. 이곳 신호등은 초록색 1개, 노란색 1개, 그리고 붉은색 2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붉은 신호등이 2개인 것은 적색과 녹색을 구분 못하는 색맹운전자들을 위해서이다. 이들은 차를 몰다가 무슨 색인지는 모르지만 신호등 2개에 동시에 불이 들어오면 정지신호로 알고 브레이크에 발을 댄다. 캐나다가 선진국 소리를 듣는 것은 G20회의를 개최했기 때문이 아니라 몇 명일까 싶을 정도로 소수인 약자들까지 세심히 배려하고 보듬어 주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MB정부가 전면에 내세우는 G20 개최효과는 국가 이미지 상승을 통한 국격 제고와 선진국 진입 가속화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G20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아직은 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명품을 걸쳤다고 자동적으로 고품격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국격이란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선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화비평가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은 물론 나라의 품격 또한 외형적 번듯함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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