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에서 리얼리티 쇼를 찍는다는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늘씬하고 건장한 남녀 8명이 한인타운의 한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도 소개되었다. 대부분 한인2세인 이들은 흑인 연예인 타이리스 깁슨이 제작하는 ‘K-타운 리얼리티 쇼’ 출연자들. LA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일반인들의 실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보도를 보면서 “한인타운의 노래방이나 소주 마시는 문화를 소개하려나?"하며 무심하게 넘겼는데, 알고 보니 지금 영어권 2세들 사이에서는 이 쇼가 대단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쇼의 비공식 예고편 같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오르고 페이스 북을 따라 퍼지면서 찬반 논란의 열기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 2세들이 이렇게 열띤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K-타운 쇼’가 MTV의 인기 리얼리티 쇼인 ‘저지 쇼어(Jersey Shore)’를 모델로 한다고 알려진 때문이다. ‘코리아타운 판 저지 쇼어’가 된다는 것이다.
MTV가 대성공작으로 꼽는 ‘저지 쇼어’는 뉴저지의 해변마을 저지 쇼어를 무대로 이탈리아계 젊은 남녀 8명의 생활을 추적한 쇼이다. 남녀가 한집에 살면서 연일 술 파티를 열고 젊은 열정과 혈기를 원초적으로 쏟아내 ‘저속하고 외설스럽다’는 비판을 달고 다녔다. 반면 바로 그 점 때문에 시청률이 치솟고 골수팬들이 많아져서 출연자들은 반 스타가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K-타운 쇼’ 역시 섹시한 여성 4명과 근육질의 청년 4명이 한 집에서 살면서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아시안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구상이다. 온라인의 ‘맛보기’ 동영상에는 여성 출연자가 변기에 앉아있는 모습, 한 청년이 여성의 입에 소주를 병째 들이붓는 모습, 한 여성의 선정적인 포즈 등이 담겨있다.
한인타운을 무대로 우리의 이민 문화나 음식문화를 알리는 교양 프로그램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상당히 낯 뜨거운 장면들이 나올 것이다" “한인 이미지에 정말 안 좋을 것이다"는 우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리얼리티 쇼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TV·케이블의 중요한 한 장르로 정착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실제 상황에서 각본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담은 모든 프로그램이 이에 속한다. 출연자들이 극한 상황들에 도전하게 한 후 최후 승자를 뽑는 ‘서바이버’, 재능 콘테스트인 ‘아메리칸 아이돌’, 도널드 트럼프가 주관한 ‘어프렌티스(도제)’ 등이 대표적이고, 한국 프로그램의 ‘1박2일’ ‘남자의 자격’ 등도 이 범주에 속한다.
리얼리티 쇼의 매력은 ‘쇼’가 아니라는 점. 시청자들은 배우가 아닌 ‘진짜 사람들’이 연기가 아닌 ‘진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릴과 짜릿함을 느낀다. 관음증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다. 한편 프로그램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리얼리티 쇼는 제작비가 싸다는 이점이 있다. 리얼리티 쇼가 전성시대를 맞은 배경이다.
그렇다면 리얼리티 쇼는 진짜 100% ‘리얼리티(현실)’일까? 각본에 맞춘 연극은 아니지만 자연 상태의 현실도 아니다. 우선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행동을 자제할 수도 있고, 과장할 수도 있다. 다음은 편집 과정이다. 하루 24시간 생활하는 장면이 모두 방영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을 생각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튀는’ 장면들 중심으로 편집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리얼리티 쇼는 현실의 왜곡일 뿐 아니라 출연자들의 실제 모습의 왜곡일 수가 있다. 쇼를 보는 시청자들은 왜곡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K-타운 리얼리티 쇼’에 우리 2세들이 깊은 우려는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코리안에 대한 전이해가 없는 대부분 미국인 시청자들에게 ‘K-타운 쇼’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코리안의 일반적 모습으로 각인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쇼’ 논란은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다. 코리아타운이 쇼의 무대로 설정된 것은 한인커뮤니티가 더 이상 미국에서 무명의 존재가 아니라는 반증이 된다. 코리안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 이미지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우리 2세들의 단호한 태도도 반갑다. 미국사회라는 지평선에 한인 커뮤니티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어떻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꿔나가느냐가 숙제로 남는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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