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귀가 먹먹한 느낌이다. 엇박자를 타고 들려온 붉은 함성 탓이었을까. 온통 월드컵, 월드컵 이었다. 왜 대한민국은 존재해야 하는가. 그 이유도 월드컵에서 찾아지는 것 같았다. 월드컵으로 시작해 월드컵으로 끝났다. 그렇게 2010년 6월은 갔다.
그리고 7월이다. 벌써 두 주째를 맞고 있지만 부부젤라의 광적인 소음은 환청이 돼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6월의 여진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 6월에 일어났던 일들이 붉은 함성이 가셔지면서 뒤늦게 하나 둘 또렷이 들려온다.
“학력이 높을수록 안 믿는다. 천안함 사태가 북의 소행이라는 사실 말이다. ‘내 주변의 사람은 90%가 안 믿는 것 같다.’ 한 대학교수의 지적이다. 안 믿는다고 해야 뭘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 풍조다.”
“한국의 신세대 장병들은 하사관들을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 신세대 장병들은 전쟁이 날지 모르니 천암함 사태의 책임소재를 가리지 말라는 입장이다. 그 바램이 셀폰을 통해 부모들에게 전달돼 작은 선거혁명을 일으켰다. 20대들이 막바지에 대거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소련블록 국가들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으로, 지난 한 해 동안 29개 국가 중 14개 국가에서 자유가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밝혔다.
지난 10년래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프리덤 하우스는 정치적으로 세계는 심각한 불황을 맞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민주화는 대세였다. 그 민주화의 장정이 돌연 정지됐다. 아니, 뒷걸음을 치고 있다.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공룡들은 그냥 앉아서 도태를 기다리지 않았다. 위기인식과 함께 자구책에 마련에 나섰다. 도전세력을 무력화시켰다. 고문, 투옥 등을 통해. 새로운 기법도 원용됐다. 형식적이나마 선거를 허용해 민주주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프레드 하이어트의 지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인터넷을 선전선동의 효과적 도구로 이용했다. 민주세력에 대한 공격도구로 활용했다. 민족주의를 고취시킴으로써 자유화 논리를 상쇄해 나갔다.
그 선봉에 선 게 중국이고, 러시아가, 이란이, 베네수엘라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권위주의 형 독재체제의 반격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민주주의에의 열정이 시들었다는 게 또 다른 원인이다. ‘민주화’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기피 어젠다’가 됐다. 미국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 이라크는 그러나 중동의 스위스가 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만연된 게 민주화 피로증세다.
그 피로증세가 특히 도진 곳이 유럽이다. 90년대 동구권 민주화의 엔진 역할을 했던 유럽은 새로 권위주의 세력으로 대두한 러시아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냉소주의, 평화주의가 휩쓸면서 자유, 민주주의라는 전통적 이상을 유럽은 스스로 져버린 것이다.
지나친 유화주의 노선의 유럽이 민주화 장정을 막고 있는 또 다른 원인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민주주의자들은 하나 같이 전사(戰士)들이었다. B.C. 5세기의 아테네인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먼저 전체주의제국 페르시아를, 그 다음은 스파르타를 상대로 싸웠다.” 역사학자 로빈 팍스의 기술이다.
“민주체제 그리스는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었다. 자유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그리스의 전사들은 격렬하게 싸웠다. 페르시아의 전사들은 동기부여가 없었다. 그 결과 그리스는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체제가 그 자유에의 투쟁정신을 상실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올까를 역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 결과는 이미 한 세대 전에, 그리고 오늘날에도 목도된다. 반전(反戰)정도가 아니다. 염전(厭戰)사상으로 유럽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평화지상주의의 만연과 함께 국론이 분열된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지 8년 동안 불과 43명이 전사했다. 그런데도 정권이 흔들리는 독일이 그 예가 아닐까.
“무적(無籍)사회의 징후가 도처에 뚜렷하다. 개인화 시대를 맞아 개인은 그저 범람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끌리고, 쏠리고, 들끓기는 우리시대의 징표가 됐다. 그들은 군중심리를 통해 위로를 얻고 집단행동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미몽(迷夢)과 선동의 온상지가 된 것이다….” 월드컵이 끝날 무렵 한 한국 내 문화평론가가 쓴 글이다.
염치·정직·도덕·책임·배려 같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덕목은 찾을 수 없다. 자기주장과 권리만 말한다. 의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 촛불 민주주의를 불길한 상징으로 보았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다. 외부적 압력 때문이 아니다. 자멸 가능성 때문이다.
‘죽음 보다는 차라리 적화(赤化)를’-평화지상주의가 판쳤던 한 세대 전 유럽에서 나온 구호다. 그 구호가 왠지 자꾸 떠올려진다. 집시법 개정실패로 또 다시 밤거리를 수놓을 무수한 촛불 행렬이 어른거리면서.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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