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605프리웨이에서 대형 사고가 났던 모양입니다. 프리웨이 위 차량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거의 30분이 흐르는 거예요, 평소 출근에 걸리는 1시간이 지났는데도 직장까지 3분의1을 채 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순간적으로 확 앞차를 들이 받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더군요.”
평소 점잖고 감정 표현을 잘 안하는 성격 때문에 미륵보살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한 한인은 최근 어느 날 아침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 프리웨이 위에서 한 순간 공격충동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교통체증은 도로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많은 운전자들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출퇴근 운전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노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지고 이런 마음의 상태는 심장병, 궤양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까운 거리를 출퇴근 하는 근로자들은 먼 거리를 다녀야 하는 동료들보다 행복도가 높고 이것을 금전으로 환산해 보면 연봉 1만달러를 더 받는 것과 같다는 한 조사 결과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LA 지역의 유일한 고전음악 방송인 클래시컬 KUSC는 매일 오후 4시부터 3시간 동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잔잔한 멜로디의 음악을 내보낸다. 방송국은 이 시간대 프로그램을 ‘도로 위 분노를 해소해 주는 음악’(anti-road rage music)이라 부른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주로 운전을 하면서 영화를 구상하고 생각을 가다듬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 한인 기업인도 “자동차를 몰 때 생각이 훨씬 잘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운전을 즐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동차는 ‘사색의 기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막힘없이 확 뚫린 도로를 달릴 때 일이지 출퇴근 하는 데만 하루 2~3시간을 자동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운전은 달가운 경험이 되기 힘들다. 지난 주 IBM은 세계 20개 대도시들의 출퇴근길 고통지수를 산정해 발표했다. 소요시간, 정체 속에 갇히는 시간, 스트레스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출퇴근길 고통지수가 가장 높았던 미국 도시는 단연 LA였다. LA의 교통체증 악명은 새롭지 않다.
10여년 전만 해도 체증은 주중 특정 시간대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는다. 주중 대낮은 물론 주말에도 극심한 체증에 갇혀 버리기 일쑤다. 주말이라고 여유부리고 나섰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또 체증은 아주 복잡한 물리적 원리가 작용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다. 독립기념일 연휴가 끝난 6일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5번 프리웨이를 이용해 출근길에 나섰던 LA 남쪽지역과 오렌지카운티 운전자들은 별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도 극심한 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인근 프리웨이에서 난 사고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 때문이다.
출퇴근길 체증은 이제 숙명과도 같은 무엇이 돼 버렸다. 자동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기나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숙제가 되고 있다. 외국어 공부를 돕는 CD와 오디오 북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운전 중 껌을 씹으면 뇌에서 알파파가 나와 긴장이 완화된다는 등 체증 스트레스 대처를 위한 조언들도 쏟아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않는다. 체증 스트레스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동차 안과 밖의 상황을 분리해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밖의 체증은 당신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다. 체증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프리웨이에서 내려 뚫린 길을 찾아보지만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한 까닭에 오히려 더 막히곤 한다.
하지만 수십 큐빅피트의 자동차 속 공간에서는 당신이 주인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운전자 마음이다. 지배할 수 있는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출퇴근길 고통지수가 결정된다는 것은 전반적인 삶의 고통지수가 결정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프리웨이 체증을 경기회복의 신호로 받아들이자며 한 은행이 벌이고 있는 ‘생각을 돌리자’는 주제의 캠페인에도 이런 지혜가 담겨 있다.
미국 스트레스 센터에서 회원들에게 가르친다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한번 읽어 보고 아침 출근길에 나선다면 체증으로 인한 고통지수를 낮추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여,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꿀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그러나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를 주옵소서. 그리고 제게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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