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축구명가인 영국과 프랑스는 자존심을 완전히 구겼다. ‘다인종 연합 무지개팀’으로 불리며 그라운드에서 통합의 힘을 증명해 왔던 프랑스는 그러한 다양성이 오히려 내분의 단초가 되면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초라하게 귀국했다. 영국 역시 라이벌인 독일과의 16강전에서 1대4로 맥없이 무너지며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조금 노쇠하긴 했어도 두 나라 대표팀에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쟁쟁한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두 팀 모두 선수와 감독, 그리고 선수들 서로 간에 불화를 겪으며 팀의 전력을 극대화 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팀웍이 생명인 축구에서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야구는 9명이 뛰는 경기지만 걸출한 투수 한 명만 잘 던져준다면 승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혼자서 11명과 상대할 수는 없다. 골은 한 사람이 넣지만 다른 10명의 굵은 땀방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전쟁에서 뛰어난 장수 한 사람이 승리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승리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뿐이다.”
히딩크는 장수인 자신의 혼자 능력만으로 4강에 오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려 한 것이겠지만 11명의 힘이 모아질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지적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아쉽게 패한 후 허정무감독 입에서 나온 “수비수를 천대하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발언 역시 축구가 공격수만이 아닌 11명의 경기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21세기 축구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스타급 선수들은 나올 수 있어도 펠레나 에우제비오 같은 예전 축구영웅들의 출현은 기대하기 힘들다. 한 선수가 그라운드를 휘저으면서 매 경기마다 몇 골씩 집어넣을 수 있었던 축구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평균 60회 정도인 보통 축구선수들의 경기당 볼 터치 횟수보다 훨씬 많은 90회 이상을 터치했던 수퍼스타 펠레조차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스타들이 아니라 바로 팀이다. 아무리 유명한 선수들이라도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선수들이 적절한 순간에 볼을 패스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팀 내분에 무너진 것과 대조적으로 팀웍을 바탕으로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거둔 팀이 한국이다. 태극전사들은 스타 의식을 내세우는 선수 없이 팀을 우선시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선전을 이어갔으며 그래서 국민들은 더욱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히딩크 이전 한국 축구는 감독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선수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모드였다. 감독 한 사람의 생각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한 경기력 향상과 창의적인 플레이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한국 축구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방적 지시와 강제 대신 자율과 소통이 자리 잡으면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은 자율의 극치를 보여줬다.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끼리 모여 상대팀 경기 비디오를 보면서 의견 교환을 하고 서로 간에 경험과 조언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경기력도 경기력이지만 선후배 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라지면서 그라운드에서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 진다.
이른바 ‘집단지성’이라 불리는 힘이 월드컵에서도 한몫 단단히 한 것이다. ‘집단지성’은 특정 조건에서 집단은 가장 우수한 집단 내부의 개체보다 지능적이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뛰어난 개인이 아닌 집단지성을 추구하는 조직이어야 살아남는다는 이론이 점차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축구처럼 팀웍이 결정적인 게임 역시 현란한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집단지성을 추구하는 팀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은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집단지성의 컬러를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는 팀은 독일이다. 선수 개개인을 놓고 보면 영국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도 선수들 간의 유기적 협력과 조직력으로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다. “전체는 항상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사실을 독일팀은 유감없이 증명해 주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역량을 모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난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