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와 숙제가 끝나고 해가 기울어져 갈 때쯤이면 동네 아이들이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고 어깨동무를 하고 이집 저집을 다니며 아직 나오지 않은 아이이름을 부르며 “~야, 놀자”를 합창으로 깔깔대며 불러대곤 했다.
여자애들은 공기돌 놀이, 고무줄놀이, 바닥에 그림을 그려놓고 한 다리 두 다리로 금을 밟지 않고 뛰는 놀이를 했다.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고무줄을 발에 걸고 율동을 하며 땀에 범벅이 되었고 한 단계를 잘하고 나면 고무줄의 높이는 종아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머리 위로 점점 높아지고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이 넘어서는 수준까지 최대한 팔다리를 늘려 고무줄을 해야 하니 그보다 자연스럽고 즐겁게 되는 운동이 없다. 대근육을 움직이는 놀이이니 의학적 용어로 보면 바로 이것이 물리치료다.
돌 하나를 공중으로 던지고 바닥의 돌을 하나씩 둘씩 셋씩 세어가며 집는 공기돌 놀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집어야 하는 두 돌이 사이에 다른 돌이 끼어있으면 돌을 공중에 던진 동안 쏜살같이 한쪽 돌을 집고 뛰어넘어 다른 쪽 돌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내던 실력은 동네에 잘 알려져 있었다.
이것도 역시 의학용어로 보면 소근육을 단련시키는 작업치료다. 편을 공평하게 갈라야 하고 노래를 해야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차례를 지켜야 하고 아름다운 승리를 맛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어린 아이들의 놀이다.
남자아이들은 비석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닭싸움에 말 타기를 했다. 오빠가 네 명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아이들 놀이에 끼었다. 비석치기를 하려면 약한 힘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밑동에 무게중심이 있는 돌을 고르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자치기에는 메이저리그 선수에 못지않게 공중에 던져 떨어지는 자의 중심을 맞추어 멀리 쳐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딱지를 꼼꼼하게 접어내고 손 기름을 묻히는 것도 다 물리치료요 작업치료다.
자치기는 자기가 쳐낸 거리를 막대를 이용해 재서 남과 비교해야 하고 구슬치기 딱지치기는 그 날 잃은 개수와 딴 개수를 계산해 두어야 한다. 더구나 부정한 행위는 여지없이 친구 간에 풀어야 한다. 두 팀으로 나누어 전쟁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리더가 있고 참모들이 있어 어떻게 싸울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누가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며 어떤 방향으로 상대팀을 제압할 것인지 결정을 한다.
남자아이들하고 어울리던 나는 늘 우리 팀의 회계사였고 전략가였다. 한번은 연탄재로 싸움을 하다 상대방 남자아이의 머리를 터트려 놓은 적도 있는 전사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변했으니 아이들의 노는 방법도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눈과 손을 사용하는 컴퓨터 게임이 흔해졌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세상과 세월의 탓으로만 볼 것인가?
이제는 걷고 뛰고 움직이려면 많은 돈을 내고 헬스클럽에 가야 하고 노래를 배우려면 음악학원을, 수개념을 배우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학원을 가야 한다. 부모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논다”인 것 같다. 아이들이 놀까봐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와 학원으로 돌리고 늘 “공부해”를 입에 달고 산다.
난 교육의 기본이 ‘노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국말이라 부모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일까? 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아동의 마음을 이해하고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발달된 것이 ‘Play Therapy’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냥 평소에 큰 소리로 떠들고 아이들과 놀면 될 것을 인형을 주고 가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아이에게 놀아보라고 하는 치료법이다. 비싸기는 무지 비싸다.
우리아이들에게는 놀 시간이 너무 없다. 어릴 때는 신체의 발달을 통해 뇌기능도 발달을 한다. 가상의 환경에서 생각하며 뇌기능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실제 상황에서 판단을 해보고 경험을 하는 것이 뇌와 언어발달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형성과 리더십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아이들만의 세계다.
인지발달의 대가로 알려진 피아제의 경우도 바로 이런 사고능력은 같은 수준의 아이들 사이에서만 발달이 촉진되는 것이지 성인과의 관계에서는 촉진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부모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야 하는 학자들의 눈과 귀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학자로서 부끄럽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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