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위층 인사들의 주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 고혈압, 암, 당뇨…. 글쎄, 그보다는 교통사고가 아닐까. 리제강이라고 했나. 직함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고.
그런 권력실세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한 북한 관측통이 던진 스스로의 질문에 답이다. 올해 80세다. 그 리제강이 지난 2일 0시45분에 평양시내 모처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거다.
북한 최고위층 인사가 윤화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된 케이스는 리제강뿐이 아니다. 김정일의 전처 고용희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도됐다. 김정일이 총애하던 김용순 대남담당비서도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발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제강의 윤화사망 보도는 어딘가 석연치 않게 들린다. 한 밤중에 스스로 차를 몰았다는 것부터가 수상쩍다. 사고의 타이밍도 그렇다. 그가 죽은 지 며칠 후 예정에도 없던 최고인민회의가 열리고 그의 라이벌인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에 추대됐다.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들은 참으로 미묘한 타이밍에 윤화로 사망하는 버릇이 있다.” 이어지는 관측통의 지적이다. 그 정황이 70년대의 상황과 흡사해서 나온 말이다. 당시 북한의 권력 뒤안길에서는 대대적 숙청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잇단 보도가 나왔다. 실세들의 연이은 사망기사로, 사망원인은 하나같이 교통사고였다.
공산당 역사는 피의 숙청사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진 북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숙청으로 흘린 피로 흥건히 젖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김일성 생존 시 김정일은 소련서 훈련을 받은 20여명의 장교를 처형했다. 당시 숙청된 군 간부는 300명이 넘는다. 체제를 비판했다는 것이 죄목이다. 김일성 사후인 1995년 김정일은 또 한 차례 군부를 대상으로 숙청을 단행한다. 쿠데타 음모가 있었다는 지적과 함께 당시 처형된 군 간부는 수 백 명에 이른다.
수백만의 아사자를 낸 90년대 말 ‘고난의 대행군’시에도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다.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가 처형되고 무려 2,000명이 간첩죄로 제거됐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또 다시 숙청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김정일 체제를 떠받든 권력의 하수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서관희 처형과 관련해 여론이 나빠지자 그 죄를 숙청의 하수인들에게 씌워 또 다시 피의 숙청을 벌였던 것이다.
이 피의 숙청사는 한 가지 패턴을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거기서 비롯된 불만의 소리는 자칫 체제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경우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뒤따른 게 대대적인 유혈숙청이다.
서관희 처형은 물론이고 1968년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사건, 그리고 뒤따른 대대적 숙청 등의 배후에서는 바로 경제난에서 비롯된 불만의 목소리 잠재우기가 한 목적으로 작용했었다는 게 훗날의 분석이다.
권력승계와 관련해 반드시 이루어진 것이 일종의 정지작업이다. 70년대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굳어지면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숙청이 바로 그 정지작업이다. 92년과 95년 김일성 사망을 전후해 이루어진 군부 숙청작업도 그 일환이다.
먼저 위기를 조성한다. 가상의 적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기 위해 외부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적과 내통한 이른바 내부의 반역분자 검거에 나선다. 피의 숙청과 관련해 김정일 체제가 보여 온 행태다.
그 유혈 숙청의 광풍이 또 다시 북한사회를 덮칠 기세다. 경제가 말이 아니다. 화폐개혁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박남기 노동당 재정부장과 김태영 부부장을 공개처형했다. 그러나 여론은 오히려 악화되고 경제는 더 나빠지고 있다. 식량부족으로 대규모 아사사태 발생 가능성만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발생한 게 천안함침몰사태다. 그리고 얼마 안가 나온 것이 리제강의 돌연한 교통사고 사망보도다. 그리고 좀처럼 열리지 않던 최고인민회의가 올 들어 두 번째 열렸다. 장성택의 부상과 함께 그동안 ‘터부’시 되어온 ‘김정일 이후’를 대비한 권력승계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무엇인가 심상치 일이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징후다. 간간히 전해지는 북한 발 뉴스들도 그렇다. 닥쳐올 대대적인 피의 숙청에 북한의 엘리트들은 떨며 숨죽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김정일에 대한 분노를 안으로만 삭이면서.
“북한 최고위층 인사들은 미묘한 타이밍에 윤화로 사망하는 버릇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이런 관측도 제기된다. “멀지 않은 훗날, 그러니까 ‘김정일 이후’의 어느 날 김정은 교통사고 사망보도도 나올 수도 있다.”
김정일 북한체제가 아무래도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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