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경비원을 고용했다. 풀타임 경비원의 임무는 가족들이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으면서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괴한이 침입해 가족을 해치고 달아났다. 경비원으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주인에게 백배 사죄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경비원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데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느니 “너무 감쪽같이 침입해 속수무책 이었다”느니 하면서 괴한 탓만 늘어놓는다. 이런 경비원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즉시 해고감이다.
천안함 정국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려 본 비유이다. 천안함 침몰이 진상조사를 통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하는 등 사태가 초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북한의 도발로 공식 규정하고 단호한 조치들을 발표했다. 북한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지지 세력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담화 내용을 보면 어딘가 2%가 부족하고 공허하다. 이런 사태가 촉발된 것을 외부 침입자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책임회피의 기미가 역력하다. 진솔한 사과나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인 국민이 경제와 복지에 쓸 수도 있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국방비로 승인하는 것은 바로 이런 도발을 막으라는 뜻에서이다. 이 같이 준엄한 위임을 받은 경비원은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는데도 주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북한 탓과 낙후된 무기 타령뿐이다.
천안함 침몰 후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문제를 놓고 또 한 차례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와 관계없이 북한은 대한민국의 주적이었고 지금도 주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의 몇 배에 달하는 연간 수십조원의 막대한 국방비는 그동안 누구를 막기 위한 지출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이 돈으로 자신들이 편안하게 잠들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 치의 물샐 틈도 없는 경계를 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정부와 군은 이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통렬한 자기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하는데 당국의 원인 발표와 대통령의 담화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문구는 찾아 볼 수 없다. 혹여 외부의 적을 향한 규탄과 성토 분위기에 묻어가면서 은근슬쩍 책임 소재를 흐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천안함 원인 발표장에 나왔던 군 장성들의 태도에 매서운 비판을 가한다. “군 장성들이 무슨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원인 발표를 하는 모습을 보며 구역질이 났다”고 꼬집는다. “불쌍한 부하들을 죽인 패잔병 주제에 너무 당당하더라”며 “일본 사무라이 같았으면 할복이라도 하는 자리였을 것”이라고 책임지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을 질타했다.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 비단 도올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안일한 안보의식도 걱정된다. 그는 “국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북한이 무력 기습을 했다”고 비난했다. 기습은 본래가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일이다. 그래서 기습을 막으려면 경계에 한시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군대 3년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왜 야간 경계가 그토록 중요한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휴식시간에 기습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진솔한 사과를 곁들여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확실한 다짐부터 했어야 했다. 이것이 책임질 줄 아는 지도자의 자세이다.
아마도 노무현 정부 때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안보무능 정권”이라는 일부 언론의 공격에 정권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그들의 엄호아래 책임론을 비껴가고 있다. 속으로 다행이라 여기겠지만 일시적인 회피와 모면이 책임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에 위협적인 적은 외부에만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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