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불타고 있었다. 자살폭탄 공격이 이루어졌다. 100% 개방된 대중교통 수단이다. 그 버스를, 지하철을 타겟으로 이슬람이스트 극렬세력의 폭탄테러가 자행됐던 것이다.
아무도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 곳을 공격하리라고는. 그러니 완전 무방비 지역이다. 그런 곳을 공격 목표물로 선정했다. 무조건적인 대량살상을 노린 것이다.
파리가 불타고 있었다.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가 발생한지 불과 수개월만의 일이다. 자동차가 뒤집혀지고 상가가 불탔다. 거리로 나선 모슬렘들. 그들의 난동으로 파리는 한동안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었다.
런던만, 파리만 불탄 게 아니다. 전 유럽이 요동치고 있었다. 자유가 넘쳐나는 곳이다. 관용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런 유럽의 대도시들이 이슬람이스트의 테러와 소요사태로 혼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 1파가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였다. 그 여파를 타고 네덜란드에서는 한 저명한 영화감독이 목이 절단된 시체로 발견됐다. 이슬람권의 여성의 학대 현장을 필름에 담았다. 그게 바로 이슬람에 대한 모욕이라는 거다. 그 대가로 무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처럼 무차별의 폭력을 가해온 그들은 누구인가. 정규 알카에다 조직원도 아니다. 탈레반 전사도 아니다. 그 땅에서, 다시 말해 유럽에서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고 자란 2세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무차별 테러 살상극을 벌인 것이다.
자폭의 목적으로 폭탄이 실린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탄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의 개방사회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관련해 던져진 심각한 질문이었다.
그 스토리들이 아주 멀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다루어졌었다. 한국 언론의 보도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극히 피상적이고 평면적 터치다. 단지 인종차별이 그런 사태를 불러왔다는 식의. 이슬람이스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통찰도 없이.
그리고 5년 후 이슬람이스트 테러 경고가 한국에서 들려오고 있다. ‘CIA 리스트에 오른 파키스탄인이 탈레반 조직 결성을 시도했다’ ‘G20를 앞두고 테러 발생 가능성이 크다’ 등등.
느닷없다는 느낌을 준다. 그동안 별다른 보도가 없었다. 해외에 나가 있던 한인이 이슬람이스트 테러세력에 무참히 살해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데 한국에서 탈레반이 테러리스트를 양성하고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태원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고 근처 이슬람 서점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점원이 빈 라덴의 정신적 스승 중의 하나인 이븐 카이엠의 책을 나에게 조용히 건넸다. ‘Arrouh’란 책이었는데 아랍어로 ‘영혼’이란 뜻이다. 이집트에서도 테러조장 우려로 금서가 돼 있다.”
이집트인으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슬람이스트 테러 관련 저술·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마크 가브리엘이 한 말이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한국에도 이슬람 원리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으로 테러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경고다.
이슬람 원리주의, 다시 말해 이슬람이스트 세력의 확산은 왜 위험한가. 증오의 문화, 피해망상의 편집광적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 하에서는 인간성은 최대로 억압된다. 현대인의 평범한 시민활동도 그들의 잣대에 따르면 범죄행위다. 정치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지상목표는 회교율령, ‘샤리아’에 복종하는 세계 공동체의 구현이다. 그래서 강요되는 게 중세시대 아라비아 모델이다. 정치와 종교의 구별이 없다. 그리고 개인의 삶에서 갖가지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생활 모든 부문에서 샤리아를 엄격히 적용하려 든다.
때문에 현대화를 거부한다. 아니, 악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비(非)회교도는 오직 박멸대상이다.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는 테러리스트 배양의 최적지다. 샤리아를 지상의 법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이스트 신정체제는 21세기가 맞고 있는 가장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도전이다.
이슬람이스트들은 무슬림 인구가 적은 곳에서는 평화단체를 가장한다. 그러면서 포교에만 전념한다. 그러다가 무슬림 인구가 5%가 넘으면 그 사회의 이슬람화를 위해 본격적 전략을 편다. 그리고 20%가 넘으면 폭동에 소요사태를 일으킨다.
소용돌이 치고 있는 유럽도시들이 바로 그 가장 나중 케이스에 해당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확산시켜 그 땅에서 자란 2세들을 자생 테러리스트로 만든 것이다. 한국은 그러면. 그 전 단계의 상황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을 이슬람화 한다는 단계 말이다.
그 징후는 벌써부터 엿보여 왔다. 한국을 타겟으로 한 전천후적인 이슬람 포교활동이 전개되고 있어 와 하는 말이다. 캠퍼스가 우선의 대상이다. 그리고 오일머니를 통해 정치, 재계 언론 등 한국의 주류사회를 파고든다.
그 결과인가. 한국 내 무슬림 수는 급증해 40만이 넘는다고 한다. 동시에 이슬람 원리주의도 소리 소문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밀려든 이슬람 쓰나미,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한국이 맞은 숨 가쁜 도전으로 보인다.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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