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버냉키 의장의 고향이다. 모처럼 고향 후배들 앞에 선 버냉키의 연설 주제는 행복이었다.
경제학자가 들려주는 행복론이 다소 의외일지는 모르지만 경제학은 본래가 어떻게 하면 인간의 행복감을 더욱 높일 수 있느냐는 고민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행복에 둔 공리주의자들이 그랬고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경제학은 다시 이런 사조로 복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경제정책의 수장인 버냉키가 행복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특히 사회에 초년병으로 발을 내딛는 고향 후배들에게 버냉키는 평생 기억하고 되새길 만한 교훈적인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조금은 색다른 주제의 연설을 준비했을 것이다.
버냉키가 졸업생들에게 들려준 행복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돈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꼭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자주 인용되는 일부 가난한 국가들의 높은 행복도 연구에는 맹점이 있다. 이런 종류의 연구들은 대개가 객관적이지 않다. 매번 다르게 나타나는 여러 결과들 가운데 일부를 확대해 부각시킨 경우가 많다. 이보다는 경제력과 행복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돈이 많아지는 것과 행복감은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냉키도 연설에서 인용했지만 이와 관련해 가장 설득력 있는 케이스 스터디로 꼽히는 것은 USC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의 연구이다.
이스털린은 젊은 미국인들에게 주요 소비재들(집, 자동차, TV, 해외여행, 수영장, 별장 등)을 쭉 열거하고 어떤 것이 이상적인 삶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는 지와 실제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16년 후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조사를 다시 했다.
이 기간에 응답자들이 가진 품목은 1.7개에서 3.7개로 늘어났지만 멋진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힌 품목 역시 4.4개에서 5.6개로 늘어났다. 긴 세월이 흐르고 경제사정이 훨씬 나아진 다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2개 품목이 부족하다고 불평했다.
소유는 소유욕을 결코 진정시키지 못한다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소유가 늘어나면 처음에는 흥분되고 행복하지만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진다. 수천만달러 로토에 당첨돼도 짜릿함과 행복감은 몇 개월 가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죽을 듯 괴로운 일을 겪은 사람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예전의 평안함을 회복한다. 우리의 뇌는 적응을 통해 곧 본래의 행복수준으로 되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유로 짜릿함을 맛보려면 계속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햄스터처럼 ‘쳇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꿈꾸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액수의 수입을 올리는 펀드매니저가 왜 조금 더 벌려고 내부거래를 하다 쇠고랑을 차게 되는지 이런 원리로 설명된다.
소유만으로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없다면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가. 버냉키는 친구,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회적인, 그리고 커뮤니티 내의 관계들을 아끼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일과 취미를 통해 좀 더 자주 ‘몰입의 상태’를 경험해 볼 것을 권유한다. 평생을 메인스트림 경제계에 몸담아 오면서 소유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많았을 버냉키가 건네는 조언이니 일견 싱거운 듯해도 가볍게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다.
지난 1일 열린 할리웃 보울 음악축제는 드넓은 공연장에 관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표의 매진 속도 또한 예년보다 훨씬 빨랐다. 경기가 아직 완전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의외의 현상이다. 주머니 사정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경기침체기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본질에 새롭게 눈을 뜬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여전히 부족한 그 무엇을 채우는 일은 그렇게 돈 드는 일도, 또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생각만 살짝 바꾼다면 말이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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