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을 넘겨 사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人生七十古來稀) 공자의 말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대를 넘긴 요즈음 이 말은 별의미가 없는 그저 고사에 지나지 않는다.
‘70을 넘기기 힘들다’-. 이 말은 그러나 여전히 일면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폭정체제라고 할까, 그런 전체주의의 수명과 관련해서. 하여튼 70년이란 세월이 한명(限命)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짧았다. 그게 대부분 폭정체제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히틀러 나치제국의 수명은 수십 년이 고작이었다. 다소 수명이 길었던 것이 일본 군국주의다. 그러나 결국 70여년 만에 패망했다. 공산주의 소련제국도 70이 한명이었다. 볼셰비키 혁명 70주년이 지나기 무섭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소련제국도 사실상 와해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새삼 시선이 동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머무른다. 21세기 공산주의 종주국 중국에도 이 ‘전체주의 체제 70년 한명설’은 여전히 통용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라서다.
“오늘날 중국은 스스로 파괴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 일당독재체제에다가, 국경선은 지나치게 확장돼 있다. 극도로 부패한 가운데 정치적으로 불안하다.” 수년 전 중국 문제 전문가 로스 테릴이 ‘신 중국제국’이란 저서를 통해 한 지적이다.
그는 중국이 갈 코스는 정해져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정치적 진화보다는 붕괴의 코스라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 있어 유혈참극 없이 권력을 포기한 체제는 없었다. 때문에 현 공산당 체제가 평화적인 정치진화과정을 겪는다는 건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서슴없이 공산당의 중국통치 종막을 예언했다. ‘국민과 겉돌고 있는 공산당’을 그 주원인으로 제시하면서 경제성장도 장기적으로 보면 체제유지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이 경고는 무시됐다. 미국과 나란히 G2로 불린다. 아니 미국을 곧 추월한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중국 예찬론 속에 파묻혀 중국체제 ‘경착륙설’은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중국이 꽤나 거들먹거린다. 스스로 21세기의 주역임을 공언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사사건건 시비다. 이와 동시에 일각에서 중국체제 경착륙설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극히 먼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은 한 문명으로서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비관적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는 극히 비관적이다.” 또 다른 중국 전문가 케리 브라운의 경고다.
2012년으로 예정된 권력교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 차기 지도자들이 맞이할 가장 큰 문제로 그는 정치개혁을 지목했다. 정치개혁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공산당이 그동안 독점했던 기득권을 상당부문 양보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2020년을 한 분수령을 이루는 해로 내다보았다. 그 시점을 안팎으로 중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 1만 달러시대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1만 달러 소득의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시끄러운 사회가 된다. 민주화의 요구가 분출된다는 말이다. 중국이라고 이 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문제는 대응방법이다. 경직된 현 중국의 정치, 경제 체제로는 분출되는 정치적 욕구를 감당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요구되는 게 민주화다. 그게 그런데 불가능해 보인다. 공산당 최우선원칙을 포기해야 되니까. 따라서 예상되는 것은 대대적 유혈사태 등 혼란상이다.
이 중국의 내부적 혼란은 세계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브라운의 지적이다. 지나친 비관론일까. 중국 현지의 소식들은 상황이 더 비극적일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연간 10만 건이 훨씬 넘는 소요사태가 발생한다. 부패한 지방 관리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북경당국에 청원서를 내는 사람만 2000만이 넘는다. 그러나 당국의 태도는 항상 ‘마이동풍’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의견은 가차 없이 묵살된다.
그 가운데 쌓여만 가는 것은 분노로 중국의 한 인권운동가는 이런 현 중국사회를 ‘혁명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사회’라고까지 묘사하고 있다.
중국의 국방비와 치안유지비는 모두 연간 750억 달러로 책정됐다. 경찰병력은 2100만으로 집계돼 정규군 수를 몇 배나 웃돈다. 무엇을 말하나. 중국지도부는 외부의 적 보다 내부의 체제도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중국 지도부는 결코 강자의 모습이 아니다. 약자의 모습이다. 그 중국 지도부가 김정일을 만나 혈맹관계를 과시했다. 천안함 비극의 당사자인 한국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그 모습이라니 수십 년 전 빛바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엽기적 해프닝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본다. 10년이란 세월 뒤에는 아마도 역사의 각주로나 남게 될 스쳐가는 존재들일지도 모르겠기에 하는 말이다.
중국 사회의 미래 주역을 바라보는 포괄적 중국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그 미래의 주역은 다름 아닌 중국의 민주화세력이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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