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초원에서 순록을 기르며 사는 소수민족인 추크치 족은 노인들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하다. 비록 삶의 환경은 열악하고 척박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노인들은 대접받는다. 노인이 지닌 경험의 가치를 젊은 세대들이 존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가난한 유목민들 사이에 노인 학대가 많이 자행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추크치 족의 노인들은 순록의 소유권을 가진 가장으로서 존경받으며 정신적으로 평안한 생활을 누린다. 노인에 대한 공경이 경제적인 풍요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과 가치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현명해진다. 추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가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지난 달 미시간대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연령별로 갈등 조정능력과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측정한 결과 60세 이상 그룹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배운 사람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 간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람을 숙성시키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세월이다. 이 연구는 나이 많은 시니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하지만 호적상 나이가 일정 시점에 이르면 퇴물로 취급돼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고, 나이가 든 사람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한마디로 시니어 근로자들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60대 이상 근로자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이들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하는 업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인마켓에 가보면 정육부와 생선부에서 나이 지긋한 직원들이 많이 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젊은이들이 힘든 마켓 일을 기피하는 탓이기는 하지만 고령화가 두드러져 보인다. 마켓 관리자들은 “60대가 많고 심지어 70대 직원도 있다”며 “고기와 생선 다루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성실함과 고객을 직접 대하는 일에는 나이 든 직원들이 훨씬 낫다”며 만족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직종, 일부 시니어들에 국한된 일이다.
그러나 시니어 고용 확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고 아이들은 점점 적게 태어나면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안전망의 부담을 의미한다.
지금은 젊은이 몇 명이 1명의 시니어를 부양하면 되지만 수십 년 후에는 젊은이 1명이 1명의 시니어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그러면 부양체계는 무너지게 돼 있다. 시니어들이 일자리를 가지면 개인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복지수요가 줄어드는 일이 된다.
또 최근 나온 연구들은 통념과 달리 62세 이상 미국 시니어들의 창업이 아주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구조사국 자료를 기초로 한 분석에서는 시니어 창업이 해당지역 평균소득을 높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니어들의 건강과 자신감이 더불어 높아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찌감치 고령화에 접어든 유럽 국가들은 시니어 인력 활용에서 미국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 그런 제도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작업장에 65세 이상 시니어와 젊은 근로자를 한 팀으로 묶어 배치하는 ‘베스트 믹스’이다. 최상의 조합을 뜻하는 ‘베스트 믹스’는 시니어들의 노련함과 경험, 그리고 젊은이의 패기와 창의력을 잘 섞어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발상인데 효과가 검증되면서 점차 많은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베스트 믹스’는 더 이상 작업장 안의 시스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베스트 믹스’에는 시니어들을 부담이 아니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시선이 담겨 있다. 고령화 시대에도 사회와 경제가 계속 역동성을 유지하고 번영할 수 있느냐는 결국 시니어들을 어떻게 생산적인 힘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베스트 믹스’는 기본적으로 시니어들이 가진 경륜과 지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통적인 효의 관점에서는 책임감 있는 부양이 강조되지만 부양이 곧 존중은 아니다. 존중은 있는 가치를 제대로 보고 파트너로서 인정하는 자세이다. ‘노년=뒷방신세’라고 여기는 시니어들의 의식 역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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