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무엇인가. 로마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페르시아 제국이 부상한 탓이었을까. 아니다. 로마를 무너뜨린 것은 야만인의 무리들이었다.” 로버트 쿠퍼가 ‘국가해체’란 저서를 통해 설파한 내용이다.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 세계 평화가 흔들린다. 그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경쟁 관계에 있는 강대국의 부상에서다. 안보에 대한 그동안의 통념이다. 20세기 역사 대부분이 바로 열강의 각축사로, 이 20세기는 전쟁의 세기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 전반부는 독일과 일본이 새로운 파워로 부상한 시기다. 그 20세기 전반부에 발생한 것이 1,2차 세계대전이다. 20세기 후반부는 소련이 그 대역을 맡았다. 그 결과로 벌어진 것이 오랜 동서냉전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강대국의 부상, 이는 안보에, 기존 국제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안보에 대한 개념이 21세기 들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약한 국가, 더 나아가 ‘실패국가’(failed state)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세계의 정치지도를 펼쳐보면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약한 국가들, 불안정한 국가들, 실패한 국가들이 띠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동유럽에서 북아프리카 그리고 남아시아를 잇는 지역이 그곳이다.
이 지역은 ‘불안정 호’(arc of instability)로 불린다. 밖으로는 끊임없는 충돌에 부대낀다. 안으로는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된다. 이 지역 국가들이 하나 같이 보이고 있는 특징이다. 한 마디로 인권부재 지역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국가성의 약화다.
이 ‘불안정 호’로 불리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세계는 외면해왔다. 그러나 마치 음습한 늪지대 같은 이곳에서 발생한 사회악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새삼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국가 단위중심의 전쟁개념은 약화됐다. 개방된 국경, 물자와 지식의 이동성이 확대된 결과다. 반면 테러조직 같은 비(非)국가 행위자의 활동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불안정한 국가, 실패한 국가의 빈곤, 테러, 마약, 내전 등의 혼란이 주변국은 물론 지리적으로 먼 국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그 결정타가 9.11사태다. 이후 국가안보에 대해 새로운 개념이 도입됐다. 경쟁 관계에 있는 강대국보다 약소국과 위기지역의 분쟁, 범죄 등 불안한 정황이 안보와 국제질서 유지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개념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소말리아 사태다. 일부지역의 사회악으로 치부됐었다. 그 소말리아가 국제 테러와 범죄조직의 온상이 됐다. 이 소말리아의 혼란은 에티오피아의 침공을 야기했고 인근 해역인 아덴만을 중심으로 해적이 들끓는 계기가 됐다.
아프리카의 한 낙후된 나라가 실패국가가 되면서 세계의 열강들이 저마다 해군함정을 파견 하는 등 전체 국제사회가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워싱턴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는 소말리아뿐이 아니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아이티, 콩고 그리고 미국 바로 밑의 멕시코도 그 대상이다. 이들 국가들은 머지않아 실패한 국가 대열에 오를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에서다.
그 ‘실패국가’로서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또 다른 나라가 김정일 체제의 북한이다. 이미 지목된 실패한 국가와 다소 다른 점은 혹독한 폭압통치를 통해 그런대로 국가성은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북한의 국가성 마저 약화될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권력 투쟁에 나선 무장집단끼리 벌이는 내전이 될 것이다.” 아메리카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니콜러스 에버스타트의 주장이다.
김정일 이후 북한이 맞이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펼쳤다. 우선의 시나리오는 현 선군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3대 권력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중국에 예속되는 경우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이 이 같은 내전 시나리오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내전은 핵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수백만의 아사자를 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게 북한의 엘리트 그룹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핵 장난으로 수많은 북한 주민이 희생되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같은 내란의 불똥은 외부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때문에 외부세력의 개입이 불가피하고 이는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국가 북한이 몰고 올 비극적 사태를 방지하는 방법은 그러면 없을까. 바이러스의 온상인 늪지대를 없애는 거다
그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북한 민주화 정책 추진이다. 국론을 결집하고 끈끈한 국제연대를 이끌어 내면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한반도 통일의지를 확고히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천안함 사태가 깨우쳐준 시대적 명령이 아닐까.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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