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쓰기와 방송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온다고 믿었던 고대에는 사람들이 신을 보았다”고 말했다. 믿는 대로 눈에 보인다는 것을 지적한 세이건의 말은 뒤집어 보면 믿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거나, 눈앞에 있어도 외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인류의 성취로 꼽힌 인간의 달 착륙에 대해 여전히 조작으로 의심하는 미국인들이 상당수다. 인간이 달에 내렸다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달 착륙 30년이 지난 시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것을 정부의 조작으로 여긴 미국인들이 11%에 달했다.
그런데 폭스방송에서 ‘음모 이론: 우리는 정말 달에 발을 디뎠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후 이 비율은 두 배 이상 뛰어 올랐다. ‘믿거나 말거나’식의 방송 하나에 수백만명이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란 게 얼마나 허점투성인가와 관련해 매사추세츠대학 토머스 키다 교수가 들고 있는 예이다.
매체들은 대중의 이런 속성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를 설정하거나 수용자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가장 흔히 동원되는 것이 전체적인 통계나 과학적인 자료보다 일부 사례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1994년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 공포가 미국을 휩쓸었다. 대중매체들은 이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열심이었고 미국인들의 공포는 그에 비례해 커져갔다. 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을 확률보다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이 55배나 높다는 과학자들의 지적은 선정적인 보도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당시의 야단법석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돌이켜 보자.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천안함 참사가 발생한 이후 한국 언론들의 보도에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배가 가라앉자마자 북한 소행으로 기정사실화 한 보수언론들은 연일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는 ‘물증’과 관계자들의 ‘발언’을 쏟아내 왔다.
반면 이번 참사의 원인이 현 정권의 실책으로 드러나길 내심 바라는 언론들은 정반대의 근거들을 찾아내는데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보도태도는 보수언론들을 꼭 닮아 있다. 난무하는 설들과 분석들 가운데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설을 잠재울 수 있겠다 싶은 것들만 골라 부각시키고 있다.
객관적이어야 할 보도가 이처럼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매체들의 이념적 좌표가 중심을 잃고 있는 데다 보도를 소비하는 수용자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현실적 필요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수용자들의 욕구를 매체들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기대와 욕구이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과, 보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들이 바로 우리의 생각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천안함 참사 이후 나타나고 있는 혼돈은 이런 기대와 욕구가 충돌하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17일 동안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천안함 선체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인양 작업을 거쳐 정밀 조사를 실시하면 몇 주 후에는 정확한 사고원인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 여러 나라들이 조사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그나마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참사의 원인이 무엇이 됐든 절대적인 물증에 의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최선이다. 어정쩡한 결론도 그렇지만 영구미제로 남는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럴 경우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욕구들에 의해 혼돈과 분열은 더 극심해질 것이다.
물이 줄줄 새는 가운데 좌초위기에 있는 ‘남북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남호’만이라도 제대로 항해하려면 천안함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이 하루속히 마무리돼야 한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 거두고 대규모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만이 국운은 아니다. 천안함 참사원인이 수정구슬처럼 투명하고 명백하게 밝혀지게 된다면 이 또한 국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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