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 지 엿새가 지났는데도 사고원인 규명과 실종자 구조가 답보상태를 보이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이런 참사가 발생할 경우 관건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대응에 심각한 문제들을 노출하면서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군이 초동 대응을 잘했다”고 칭찬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많은 국민들이 실소하고 있는 이유다.
천안함 침몰 참사 발생 이후 한국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악하자면 ‘설왕설래’와 ‘우왕좌왕’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온갖 설들이 난무하지만 현재로서는 선체가 박혀 있는 해저의 진흙탕 물속처럼 뚜렷해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일부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공격이 참사 원인이라는 가정 하에 기사와 사설을 쏟아 내며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정부 발표보다 한참 앞서 나가는 이런 보도들은 불확실한 것은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예의 그 버릇이 다시 도진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정부가 북한의 개입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는데도 못들은 척이다.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식의 ‘라면 사설’은 선동에 가깝다. 이런 보도들의 노림수는 간단하다. 맞으면 ‘애국언론’으로 보다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것이고 틀리면 ‘아니면 말고’로 은근 슬쩍 넘어가면 그만이다.
정확한 참사 원인은 천안함이 인양되면 밝혀질 것이다. 그렇다고 참사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는 일. 이번 참사는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위기 대응능력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참사 발생 후 해군이 보여준 대처는 이런 의구심을 부채질해 준다. 발표 내용도 오락가락이고 사고 지점에서의 수색 구조작업과 미군과의 공조 또한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신속이 생명인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위기는 항상 예기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발생한다. 또 사소한 문제 혹은 부주의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모든 상황에 대비한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인 매뉴얼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한국의 백화점들은 앞 다투어 수백 가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매뉴얼을 갖췄다고 위기가 비켜가거나 신속한 대응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매뉴얼이 문서보관함 속의 책자가 아니라 관계자들의 머리에 확실하게 담겨져 있는 살아 있는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천안함 참사는 바다 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참사 대응은 평소 이런 상황을 별로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해군은 몇 년 전 해경이 개발한 위치추적 구명복을 예산을 이유로 보급하지 않았다. 함정 구입과 건조에는 수백억, 수천억을 쓰면서도 이런 돈은 아끼려 했다.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만약 해군이 한 벌에 10여만원 하는 구명복을 구입해 일부 병사들에게라도 지급했더라면 침몰한 함미의 위치 추적이 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 것을 아끼려다 큰 것을 잃는 어리석음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빈틈없이 신경 쓰는 것이 제대로 된 위기 대응책이다. 소소해 보이는 디테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느냐에 의해 종종 국가의 수준이 드러난다. 경제 수치가 조금 호전된 것을 두고 마치 선진국에 진입한 양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나라의 수준은 소득 몇 백달러 더 올라갔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해 부산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의 사격장 참사가 발생했을 때 외국 순방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참모의 보고가 아닌 일본 총리를 통해서였다.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당시의 일이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참사를 ‘한국호의 침몰’로까지 표현하는 논객들이 있는데 이를 지나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외국학자들과 언론들의 호의적 발언과 보도에 도취해 스스로의 문제를 돌아보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대한민국의 진정한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요원하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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