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LA카운티 스몰 비즈니스 커미셔너 김기천 박사는 “자신들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관대한 민족”으로 네덜란드 사람들을 기억한다. “거의 40년 전인 당시에 네덜란드는 이미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 정도로 철저하게 근검절약 하는 게 네덜란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만 못한 사람 돕는 일에는 아낌이 없죠. 국민들도 관대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초청해 전액 국비로 공부시키는 등 베풀 줄 아는 나라입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콧구멍이 유독 넓다. 그래서 스케이트를 잘 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공짜인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기 위해서”라고 농담한다. 농담 하나에서도 이들의 철저한 실용의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김 박사의 설명처럼 네덜란드는 다른 이들에게는 관대하다. 국가 예산의 상당부분을 저개발국 원조에 아낌없이 지출한다. 1950년 한국전 파병도 이런 마인드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히딩크를 통해 우리와 한결 친숙해진 네덜란드는 작지만 강한 ‘강소국’이다. 지난 1997년 시사주간 타임은 시대별로 세계경기의 호황의 역사를 정리한 ‘최고의 시대들’이라는 특집을 실었다. 이 특집은 17세기 이후 인류사에 황금기로 기록될 만한 여섯 개의 시대를 선정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로 비교했다. 그 결과 가장 오랫동안 호황을 누린 것으로 꼽힌 것이 17세기의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풍차와 운하이다. 그만큼 자연환경이 척박하다. 이런 환경을 극복한 네덜란드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래서 그들은 “신은 우주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네덜란드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항으로 꼽히는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은 물을 메운 자리에 세운 초대형 건축물이다.
이 같은 네덜란드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네덜란드를 키운 힘의 8할은 ‘유연하게 열린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실용주의의 바탕이 되고 있다. 열린 문화를 만드는 힘은 사회적 투명성에서 나온다.
네덜란드의 주택들은 대부분 한쪽 벽면이 큰 창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낮이건 밤이건 창문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높은 담과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다른 나라 집들과는 다르다.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집은 숨길 것 없이 다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이들의 금메달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그러나 한국선수들의 승전보만 우리를 미소 짓게 한 것은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경기장을 가득 메운 네덜란드 응원단이 보여준 성숙함은 한국선수들의 금빛 질주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운하가 많은 네덜란드에서 스케이팅은 최고 인기 스포츠다. 1만m 경기에 나선 이승훈은 우승 후보인 네덜란드 선수들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헌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승훈의 역주 뒤에는 네덜란드 관중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있었다.
자국 선수와 레이스를 벌이던 이승훈이 기록적인 페이스로 달리자 네덜란드 응원단은 일제히 일어나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그를 응원했다. 이승훈이 올림픽 기록을 깨자 자기 나라 선수 일처럼 기뻐했다. 네덜란드 관중들의 열린 모습은 왜 네덜란드가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됐는지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삽화였다.
국제사회의 인정을 갈망하는 한국에 네덜란드는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나라이다. 그만큼 배우고 취할 만한 점이 많다. 철저한 실용정신과 어항 같은 사회적 투명성,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방적인 문화가 그것이다. 한국에는 아직 부족해 보이는 면모들이다.
밴쿠버에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이 짜릿함이었다면 네덜란드 응원단이 안겨준 것은 잔잔한 감동이었다. 그래서인지 밴쿠버의 겨울 스포츠 제전은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도 한결 풍성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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