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요즘 한참 유행하는 말이다. 일등을 원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원망이며 갈망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기에 듣고 또 들어도 늘 그 대목에서 함께 까르르 웃는 것이다.
그러나 일등만 기억하는 것이 과연 최고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문제이고, 그것이 세상을 더럽게 하는 것일까? 학문적으로 볼 때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또 우리는 어렵고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상황과 경험 속에서도 곧 평안을 찾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망각이라는 인지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조지 밀러(1956)와 많은 연구자들이 밝힌 결과를 보면 인간이 한번 보고 단기에 기억할 수 있는 양은 일곱 개에서 두 개를 빼거나 두 개를 더한 정도라고 본다. 단기기억 속에 있는 내용은 10초 정도면 사라지게 되니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말이 바로 사실이다.
에빙하우스(1885)의 연구에 따르면 망각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일어나게 되며 아무리 열심히 외운 내용이라도 10분이 지나면 망각이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면 50% 이상을 잊게 되고, 하루가 지나면 78%를,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90% 이상을 잊는다고 한다.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든지 열심히 반복을 해야 한다. 망각 속도에 따라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의 단기기억과는 달리, 반복을 통해 우리의 장기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거의 평생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름이나 얼굴이 머릿속에서는 빙빙 돌면서도 생각이 안 날 때 우리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는 우리가 꺼내지 못하는 것이지 결코 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기억을 연구하는 인지이론이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일등을 한 사람은 미디어를 통해 귀가 아프도록 듣고 또 듣는 반복을 통해 우리 머릿속에 남게 되고 일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반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망각의 덧에 걸려 장기기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점은 단기기억이나 장기기억, 혹은 망각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반복 학습의 기회를 주게 되는 일등이 되려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면 당연히 다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미국에 사는 소수민족 사람들의 특성이 자녀 교육에 큰 관심이 있으나 그들이 추구하는 학문의 범위는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특정 직종으로 한정되어 매우 좁다는 것이다. 한인 부모들의 관심을 보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대학을 준비하고 있는 한인 학생이나 부모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관심분야 또한 매우 좁은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있다면 세상의 기억 속에서 남을 한 명을 빼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잊혀질 것이고 그들의 외침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진정 일등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남들이 가지 않는 분야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자녀가 세상에서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는 부모라면 그들이 더욱 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도록 격려하고 협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남이 가지 않은 그 길이 본인의 잠재력과 재능까지 맞아 떨어진다면 금상첨화이다. 세상이 일등만 기억한다고 푸념을 할 것이 아니라 일등이 될 수 있는 분야로 시각을 넓히고 세상이 확실히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고 쫓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박찬호가 한인으로 처음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뒤를 쫓았고, 박세리가 LPGA에 우승을 하자 한인 낭자의 팀이 꾸려질 정도다.
남의 뒤를 쫓기보다는 박찬호나 박세리처럼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할 수 있도록 자녀의 의견과 개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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