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올림픽 덕분에 가는 곳마다 엔돌핀이 넘친다. 지구상 최정예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 자체만으로도 눈의 성찬인데 한국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자 한인사회는 웃음꽃이 반발했다. 특히 25일 김연아의 금메달이 준 감동은 앞으로 두고두고 엔돌핀 솟구치는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스포츠라는 피라미드에서 최정상을 차지하는 극소수 엘리트들이다. 탁월한 유전자, 훌륭한 코치, 첨단의 스포츠 테크놀로지로 삼위일체의 축복을 누리는 선택된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피라미드의 제일 밑바닥에는 누가 있을까. 피겨 스케이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빈민가 어린이들이 될 것이다.
밴쿠버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그 한편에서는 제3세계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행사가 있었다. 운동이나 놀이를 통해 극빈층 어린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비정부기구 ‘뛰어놀 권리(Right to Play)’가 주관했다.
RTP의 총재는 노르웨이 태생의 메달리스트였던 요한 올라프 코스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3개 금메달을 휩쓴 것을 포함해 금메달만 4개를 딴 스피드 스케이팅계의 전설이다.
스포츠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그가 제3세계 어린이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4년 무렵이었다. 아프리카 동쪽의 신생독립국, 에리트레아에서는 긴소매 옷 입은 아이가 인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공이 없어서 아이들이 옷소매를 묶어서 발로 차고 논다는 것이었다.
1994년 올림픽이 끝난 후 그는 13톤의 운동기구들을 기부 받아 에리트레아로 향했다. 주위에서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운동기구를 가져가다니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라며 냉소적이었다.
그 역시 막상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한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식량 대신 축구공을 가져간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그런 그에게 당시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말했다. “이제까지 받아본 최고의 선물입니다. 처음으로 우리가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폭력과 공포로 심신이 메말랐던 아이들이 공을 차면서 웃음을 되찾고 동심을 회복하는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RPT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후원 하에 제3세계 20여 개국에서 100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운동과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뛰어놀 권리’를 지켜줌으로써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길을 터주면 그것이 사회 변화의 기초가 된다고 믿는 사회운동이다.
빈곤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 먹을 것 대신 공을 주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평생을 가난의 한 가운데서 살았던 마더 테레사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 “가난이 정말로 비참한 것은 빵이나 지붕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다
그래서 빵보다 자존감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다. 베네수엘라의 유명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아버지이다. ‘시스테마’는 영어로 시스템. 음악을 매개로 빈곤과 싸우는 사회변혁 시스템이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그는 빈곤문제가 심각하던 1975년 빈민층 어린이들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교실을 열었다. 갱과 마약이 판치는 험악한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구하려면 음악으로 심성을 바로 잡는 길밖에 없다고 그는 믿었다.
악보받침대 50개를 기부 받아 음악교실을 연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아이들은 11명이었다. 그 11명이 30여년 지나는 사이 80만명으로 불어났다. 90% 이상이 빈민가정 출신인 이들을 대상으로 엘 시스테마는 조직적으로 음악교육을 시킨다. 2살부터 리듬감각을 익히고 4살이 되면 악기연주를 시작해 예닐곱살이면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
일년 열두달 매일 음악 속에 자라니 비뚤어질 겨를도 없다. 그렇게 배출된 세계적 스타가 LA 필하모닉의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이다.
스포츠나 음악이 터주는 사회변혁의 물꼬는 아름답다. 올림픽에 출전해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모토대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사회적 약자들을 아우르며 모두 함께 ‘빨리, 높이, 강하게’ 되자는 운동은 더 아름답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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