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불륜 사실을 시인하고 팬들의 용서를 구한 타이거 우즈의 사과를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흥행을 위해 우즈의 스타파워가 절실한 PGA는 공개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비판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우즈의 공개사과가 끝난 후 “방식이 일방적이고 내용도 기계적”이라는 논평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성별에 따라 반응이 크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동병상련 의식의 발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성들은 “그만하면 됐다”는 반응이 대세인 반면 여성들 사이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다. 일부 여성 논평가들은 “아침 일찍 우치텔과 몰래 전화를 나눈 후 공개사과 석상에 나왔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우즈는 이날 공개사과를 하면서 ‘악어의 눈물’이라도 흘렸어야 했다. 우즈로서는 큰 맘 먹고 마련한 자리였을 텐데 그가 기대했던 만큼의 이미지 회복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우즈는 사과문에서 “나는 내 주변의 유혹을 당연히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I felt I was entitled)고 고백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검증할 길은 없지만 문제점에 대한 그의 자가진단만은 솔직해 보인다.
‘골프 황제’ 우즈가 아주 오랜 기간 일탈을 숨길 수 있었던 요인은 언론과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즈와 언론의 관계는 통상적인 선수와 언론의 관계가 아니었다. 언론에 우즈는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그를 건드리는 것은 좋은 뉴스거리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서 우즈는 자연스럽게 전능감에 휩싸이게 되고 무소불위의 존재가 됐다. 그가 말한 대로 “다른 룰의 적용을 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성공하거나 유명해진 사람들을 종종 꼴불견과 일탈로 이끄는 것은 이 같은 ‘자격의식’(sense of entitlement)이다. 이런 의식은 적당하면 자긍감의 토대가 되지만 지나치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된다. ‘사’자 돌림의 전문직들이 열쇠 3개를 요구하는 것은 초보적 수준의 자격의식이다.
정말 심각한 증상은 사람을 변질시키는 자격의식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약해지고 다른 이들 위에 서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들 때린 녀석을 직접 응징한답시고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나서는 회장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생각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과 규범은 안중에 없다.
또 겸손했던 목회자가 부흥과 인기에 도취되면 자격의식의 노예가 된다. “내가 이 정도는 누리는 게 당연하지”라는 자격의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초심은 점차 사라진다. 몇 년 전 잇달아 터져 나왔던 TV 부흥사들의 비리는 대표적 사례이다.
기업을 망하게 하고도 뻔뻔하게 거액의 보너스를 챙기는 CEO들 역시 잘못된 자격의식을 가진 집단이다. 왜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르는가를 연구해 온 한 전문가는 “나는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는 잘못된 자격의식이 주범이라고 결론 내린다. 부정회계로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엔론 스캔들의 장본인 켄 레이와 주식 부정거래를 했던 마사 스튜어트는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까지는 성공의 표상이었다. 이들은 성공에 도취해 불법 행위조차 자신들은 저지를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성공과 범죄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며칠 전 본 TV 프로그램에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여성산악인 오은선에게 누군가 “등반에 나서기 전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나 자신”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등반 도중 아니다 싶으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혹시 욕심 부리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가장 두렵다”는 설명이었다. 스스로를 경계하는데 소홀하면 자격의식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한순간에 실패와 스캔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즈는 머지않아 필드로 복귀할 것이고 PGA를 또 한번 호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삶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 질 것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세밀한 관찰의 대상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는 이런 압박감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우즈는 현재 섹스중독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런 압박감과 자격의식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는 한 일탈의 재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즈에게 필드의 황제로 다시 군림하는 일보다 한층 더 힘겨운 싸움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될 것이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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