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이었나. 오바마 대통령이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에게 B+의 평점을 주었던 게. 아마 내심으로는 A학점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대선에서 53%의 득표율을 올렸다. 민주당은 상·하 양원에서 모두 과반수를 넘겼다. 그가 내세운 어젠다에 유권자들은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야심적인 의안을 내놓았고 그 의안들은 차례로 가결됐다.
그러니 사실이지 B+란 평점도 겸양지덕을 발휘해 한 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달이 채 못 된 현재.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마비상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헬스케어개혁안은 사실상 사망신고를 마쳤다. 환경 법안에서 심지어 직업 창출을 위한 의안도 답보상태를 맞고 있다. 마비현상은 해외정책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테러리즘의 위협에, 이란의 핵 도발에, 또 중국의 만만치 않은 도전에 수동적인 대응만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다스려질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논객들마다 한 마디씩 하고 나섰다. 미국의 현 정치 시스템을 탓한다. 미국식 의회정치의 한계성을 지적한다. 파당정치가 도마에 오른다.
견해가 분분하다. 그 논쟁의 출발점은 그러나 하나다. 오바마 같이 빈틈없는 정치인이 어떻게 집권초기에 그토록 곤경을 맞게 됐는지,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이 그 출발점이다.
‘스캇 브라운 이후’(After Scott Brown)란 말이 유행이다. 마치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세대를 구분 짓는 것 같이 미국 정치를 ‘스캇 브라운 이후’와 ‘이전’으로 구분 짓고 있다.
2010년 1월19일 한 사건이 발생했다. 블루 스테이트 중의 블루 스테이트인 매사추세츠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무명의 보수 정객 스캇 브라운이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 진보세력의 대부 에드워드 케네디가 근 반세기를 지켜온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시적인 이변인가, 아니면 정치적 쓰나미인가. 한 달이 지난 현재 판단은 쓰나미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진보세력의 본산 매사추세츠의 정치지형 자체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캇 브라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아성인 매사추세츠 지역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자들은 쫓기고 있다.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이 주도한 진보 의안에 지지를 보낸 민주당 후보들은 ‘래디칼’로 낙인찍히면서.
‘스캇 브라운 이후’를 상징하는 단적인 현상은 64년 만에 처음으로 ‘케네디’란 이름을 매사추세스 정치판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뿐이 아니다. 패트릭 케네디가 로드아일랜드에서 하원의원 재출마를 포기함으로써 케네디란 이름은 전체 뉴잉글랜드 지역 정치판에서 사라지게 됐다.
무엇이 ‘스캇 브라운 이후’시대를 열게 했나. 오바마와 민주당 지도부의 판단착오가 우선 지적된다. 유권자 정서를 잘못 파악했다. 그 결과 지나칠 정도로 진보 일색의 의안 법제화를 서둘렀다.
선명한 좌파노선의 개혁에 손을 댔다가 국민적 저항에 가까운 반대에 봉착한 것이다. 거기다가 하나 더. 선거에 이겼다는 자만심이 정치적 오만으로 발전됐다. 그 끝 모를 자만심이 정치적 재난을 불러온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파워 엘리트에 있지 않을까. ‘스캇 브라운 이후’ 시대를 가져오게 한데 대한 다른 앵글의 분석이다.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은 일종의 조급 증세를 보이고 있다. 짧은 시간 내에 가시적 성과를 올려 스스로가 엘리트임을 증명하려 든다.”
데이빗 브룩스의 지적이다. 클린턴은, 건강보험개혁을 서두르다가, 부시는 중동지역을 하루 아침 변화시키려다가, 그리고 오바마는 건강보험에, 에너지문제에, 환경문제에, 또 더 많은 것들을 한 번에 변화시키려다가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상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치적 기득권층을 갈아치우는 평화적인 선거혁명 사태를 맞고 있다.” 이번에는 ‘아메리칸 싱커’의 허버트 마이어의 주장이다.
“21세기 들어 발생한 두 가지의 사건, 9.11사태와 월스트리트 붕괴는 바로 미국의 정치 기득권층의 실패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 실패한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은 정치는 물론, 경제, 교육, 문화 등 미국 사회 전반에서 목도되고 있다.”
이어지는 그의 주장으로, ‘스캇 브라운 이후’시대를 단순한 정파적 대립구조로 보지 않았다. 실패한 정치적 기득권층에 대한 유권자들의 합헌적인 반란으로 파악했다.
올 중간 선거는 그러면 어떤 의미를 지닌 선거가 될 것인가. 오바마에 대한 단순한 국민투표일까. 혹은 미국의 정치 지평을 바꾸는 선거가 될까. 아무래도 후자 쪽이 아닐까. 성난 민심이 반드시 공화당 지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하는 말이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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