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시아 순방계획을 중단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별 연설을 통해 미국의 메시지를 전했다. “당신들은 결코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현재 이 시간 미국은 당신들과 함께 할 것이다.”
워싱턴은 항공모함 ‘칼빈슨’호와 병원선을 급파하면서 본격적인 구조작업을 위해 1만 명의 병력을 투입시켰다. 정부가 긴급 지출한 1차 구호금은 1억 달러. 그 뒤를 이어 수 억 달러의 구호기금이 계속 답지하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각양의 자선단체, 비정부기구(NGO)들이 성금을 모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자원봉사자 대열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현장으로 달려가 고통을 함께 하면서 하루아침 사랑하는 가족을, 또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을 돕고 있다.
진도 7.0의 대지진이 아이티를 휩쓸자 미국이 보인 반응이다.
중국도 빠른 반응을 보였다. 정부지출 1차 구호금을 440만 달러로 책정하는 한편 50명의 구조대를 보냈다. 이 중국 구조대는 아이티주재 유엔 본부건물 발굴 작업에만 매달렸다.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아이티에 파견된 중국 군인들이 매몰된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발굴된 8구의 시신은 본국으로 보내졌고 후진타오 주석이 참가한 가운데 추도식이 엄수됐다. 아이티에서 재난을 당한 그들을 국가적 영웅으로 기린 것이다. 그러나 비난이 뒤따랐다. 중국은 자국민 구조와 시신발굴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비난이다.
북경당국은 서둘러 소방작업에 나섰다. 40명의 의료진을 20톤의 의료장비와 함께 아이티에 보낸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그러나 비판의 소리는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과 함께 G2로 불린다. 그 중국이 대만보다도 적은 구호금을 보내다니. 거기다가 자국민만….
아시아세기라고 했던가. G20 회의가 오는 가을 한국에서 열리면서 아시아세기 이야기가 부쩍 자주 나온다. 세계의 파워가 동진, 아시아시대가 드디어 시작됐다는 거대담론이다. 이 담론의 축을 이루는 것은 미국 쇠망론과 중국 부상론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진보세력, 다시 말해 미국의 좌파 지식인그룹에서 꾸준히 회자되어온 게 미국 쇠망론으로, 요즘 들어서는 일부 보수 지식인들도 전망을 같이한다.
중국의 경제규모는 2040년께 미국 경제의 3배가 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포겔이 내놓은 전망이다. 보수논객 조지 윌은 이 전망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인구 노령화에, 쇠퇴하고 있는 미국을 젊고 공격적인 중국은 곧 추월할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 인구통계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쇠퇴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비관론을 편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이는 미국의 약점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보고 중국이 지닌 약점을 간과한 데서 나온 전망이다. 포브스지의 컬럼니스트 조엘 콜킨의 반론이다.
보다 심각한 인구노령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2050년께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한 연령층인 15~64세의 미국 인구는 42%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중국은 10%가 줄고, 한국은 30%, 또 일본은 45%나 격감될 전망이다.
중국이 맞이한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남성인구 과잉현상이다. 결혼적령 연령그룹에서 중국은 이미 2,400만 이상의 남초(男超)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남성인구 과잉현상이 누적될 때 오는 사회적 긴장감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가 지적한 중국의 인구통계적인 문제들이다. 문제는 이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보다 더 심각한 인구노령화문제에 직면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은 민주화가 정착된 유연한 체제다. 말하자면 사회불안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사회다. 정보의 자유조차 허용할 수 없는 허약한 체제가 중국이다. 이 중국인구 중 절대다수인 농촌인구는 교육수준이 극히 낮다. 때문에 한 번 중국 경제가 불황에 빠져드는 날이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이란 측면에서 볼 때 중국 경제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의 지적이다. 중국의 경제력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싼 노동력에 근거한 것이다. 말하자면 서방의 기술을 카피해 공산품을 조립하는 수준이 중국 경제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그 갭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중국학생들이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80%는 미국에 주저앉는다. 이런 저런 중국경제와 사회 현실을 감안할 때 아시아시대, 다시 말해 중국세기도래는 시기상조라는 게 소르망의 지적이다.
한 가지가 더 있을 것 같다. 국격(國格)이라는 측면 말이다. 무려 2조4천 억 달러의 외화보유를 자랑한다. 그 돈으로 북한, 이란, 수단, 미얀마 등 폭정체제를 적극 매수하고 있다. 자원 확보에 혈안이 돼서다. 그러면서 아이티 구호기금으로는 고작 수백만만 달러를 내놨다.
그런 중국이 과연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답은 아직은 멀었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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