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눈이 하얗게 많이 내렸다. 곳곳에서 눈을 치우느라 고생이 많다. 그래도 뉴욕지방은 워싱턴DC보다는 눈이 덜 내렸다. 워싱턴DC는 80여년 만에 처음으로 눈이 1미터가 넘게 내렸다 한다. 1미터는 인치로 30인치 이상이 된다. 사람의 허리가 눈에 파묻힐 정도다. 모처럼 내린 많은 눈 때문에 희비가 교차된다.
눈이 하루 온종일 내린 날은 눈 때문에 한인상가도 절반 이상은 문을 닫았다 한다. 타격이 크다. 정부는 정부대로 공휴일로 정해 쉬는 통에 그에 따른 손해만 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그러나 눈 위에서 뒹구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연인들은 눈을 맞으며 데이트를 하면서 낭만을 느꼈을 것이다.
눈이 많이 오고 난 다음에는 눈이 녹고 녹은 눈은 얼어 길이 빙판이 된다. 겨울철 빙판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두 명이 빙판에 넘어져 의식을 잃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경을 해매다 결국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한 명은 십 수 년 전, 길을 건너다 변을 당했고 또 한명은 수 년 전, 가게 문을 열려고 나왔다 변을 당했다. 빙판에서는 앞으로 넘어지면 그래도 손으로 짚을 수 있어 큰 위험은 면한다. 하지만 뒤로 넘어질 때는 속수무책이다. 손을 쓸 겨를이 없다. 그래서 빙판 길을 다닐 때는 고개와 허리를 숙이
고 걷는 것이 좋다.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지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으니 그렇다. 하긴, 제일 좋은 것은 조심하여 미끄러지지 않고 다니는 것이다.
겨울철은 빙판도 조심해야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안전사고에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 집에서 나와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려는데 밴(자동차)이 한 대 막아서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파란 불이 되어 가야 하는데 가지를 않는 것이다. 신호가 바뀐 뒤, 이상하다 싶어 자동차의 뒤를 돌아 길을 건넜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밴이 움직이며 앞으로 나가더니 건너편 보도 불럭을 박고 길 한 가운데에서 멈춰 버렸다. 다행이도 빨간 불에 섰던 자동차들이 움직이려 하던 순간이어서 충돌하지는 않았다. 마침, 가까이에 있던 경찰차가 길을 막고 경찰이 내려 밴 자동차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운전수가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 같았다.
몇 분이 지나자 불자동차와 앰블런스 구급차가 왱왱 거리며 도착했다. 들것이 내려지고 주위엔 경찰과 구급요원들이 이리저리 오고가고 있었다. 일대는 교통이 마비되어 혼잡을 일으켰다. 여기서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그 밴(자동차) 앞으로 지나다 그 밴이 나를 밀고 지나갔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란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 밴의 앞쪽으로 지나가다 치었다면 중상 아니면 사망이었을 것이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그날 밴을 몬 사람의 상태는 모른다. 오전 7시 전이라 술을 먹고 운전했다고는 할 수 없다. 아마도 심장마비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이 누구에게 닥칠지 모른다. 겨울
철은 기온이 낮아 안전과 건강에 더 유의해야 할 것 같다. 겸손은 사람의 덕목에서 가장 큰 항목 중 하나에 속한다. 실력은 좀 모자란다 하더라도 사람이
겸손하면 그 겸손으로 조금 모자란 실력을 대신할 수 있다.
겨울 빙판을 지나갈 때, 고개와 허리를 숙여 다니는 것은 일견 겸손의 자세다. 우선 안전하다.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빙판을 지나다 뒤로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경우엔 겨울 빙판을 지나야 할 때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난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은 더욱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겸손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아첨이 아닌 겸손은 사람을 크게 만든다. 교만하고 목이 곧으면 인생의 빙판 길에서 넘어져 부러질 수도 있다. 겨울 산 등산객은 눈 덮인 하얀 산을 오를 때 즐겁기도 하겠지만 조심도 해야 한다. 밴 자동차의 뒤를 돌아 위기를 면하듯이, 늘 앞서가는 것보다도 뒤를 돌아가는 것이 자신을 구할 때도 있다. 하얗게 덮인 눈도 다시 녹는다. 녹으면 눈 속에 덮였던 실상들이 나타난다. 실상은 곧 현
실이다. 하얀 눈에 잠시 머물렀던 낭만은 뒤로해야 한다. 겨울철 건강과 안전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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