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사랑’이라는 단어는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사랑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항상 기분좋은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화산같고 폭포수 같은 것이라면 중, 장년노인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강이나 시냇물 혹은 샘과 같은 의미가 있는 말이다. ‘사랑에 성공한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요, 사랑에 실패한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한다면 좀 너무 과한 말일까? 오늘날 젊은이들이 쉽게 사랑을 하고 또 쉽게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밸런타인 데이가 지닌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서양은 해마다 2월 14일을 밸런타인 데이(St. Valentine‘s Day)로 정해놓고 남녀간에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즐긴다. 밸런타인 데이의 유래는 미스테리로 쌓여 있지만 2월은 오랜 기간 로맨스의 달이 되어 왔다. 한 전설에 의하면 3세기 로마 시대에 발렌타인이라는 사제가 투옥되었다가 처형되었다. 이는 당시 클라우디우스 II 황제의 명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황제는 군 전력유지를 위해 법으로 젊은이들의 결혼을 금했는데 밸런타인은 몰래 젊은이들의 결혼을 시켰다는 것이다.
밸런타인 데이에 관한 전설이나 유래가 어찌됐든 그것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다. 좌우간 이날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사랑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먼저 사랑을 고백해도 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어느 나라나 밸런타인 데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 역사와 전통이 있다. 이는 국가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사랑을 장려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가문이나 국가의 힘이 곧 남녀의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을 통해서 인류가 번성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밸런타인 데이와 비슷한 사랑고백의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탑돌이’라는 의식은 보름달 밤에 처녀들이 밤새워 탑을 도는데 세 번만 눈이 맞으면 결실을 맺는 날이었다. 삼국유사에 보면 금현이란 사나이가 이 탑돌이에서 사랑을 맺은 것으로 나와 있다. 또 견우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날, 총각이 처녀가 있는 집의 담을 넘어가는 풍속이 있어 머슴이 몽둥이를 들고 월담을 지켰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런데 요즘 혼전에 이미 차후 이혼에 대비해서 계약서를 써두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차마 듣지 못하던 참으로 놀랍고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 가지고 무슨 사랑으로 결혼생활을 잘 해나가겠는가. 사랑이 없는 결혼은 해봤자 결론은 십중팔구 별거 아니면 이혼이다. 밸런타인 데이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고 사랑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을 발전시켜 잘 마무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미 기초 과정을 거쳐 오랜 동안 가정생활을 유지해온 나이든 부부들의 사랑도 이런 기회 다시금 생각해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인사회 가정들이 보이지 않게 너무나 버려지고 금이
간 가정이 많다고 들리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민와서 함께 고생고생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어 왔는데 이제와서 균열이 생긴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도 사랑이란 단어에 어느 인종보다 인색하다. 한국에서 살 때 몸에 밴 유교적인 관념과 폐쇄적인 생각 때문이다. 쑥스러워 못하고 계면쩍어서 못하고 그러다 보니 ‘사랑한다’ 하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하고 지낸다. 그러고서 어떻게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기분과 마음을 녹여준다면 왜 그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 문제인가. 밸런타인 데이는 무디어진 부부 쌍방간에 사랑의 불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지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인연을 맺는 사랑의 시작이 중요한 것이라면 맺어진 인연을 잘 꾸려가고 지켜가는 과정과 마무리도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가슴 설레며 시작했던 그 고귀한 사랑이 녹슬고 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밸런타인 데이에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볼 화두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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