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나라 전체가 ‘온천의 천국’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온천이 흔하지만 그 중에서도 규슈의 벳푸는 예부터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다. 끓어오르는 물의 종류에 따라 ‘바다 지옥’ ‘산 지옥’ ‘피 지옥’ ‘도깨비 산 지옥’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지옥 온천이 대표적인 관광거리지만 요즘은 한물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즘 뜨는 곳이 여기서 조금 떨어진 산골에 자리 잡은 유후인이란 마을이다. 도시 전체가 관광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이소자키 신이 세운 기차역을 따라 아기자기한 상점과 식당들이 줄을 지어 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긴린 호반에서 새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놀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수 옆에는 샤갈 갤러리가 있다.
근처에 아담한 어린이 공원도 있는데 특이한 것이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 아이들은 찾아 볼 수 없고 노인들만 몰려나와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곳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어린이를 보기 힘들다. 어디를 가나 노인들뿐이다. 부부 당 출산율은 1.5명 이하로 세계 최저 수준이고 평균 수명은 80세가 넘어 세계 최고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문명과 야만과의 거리는 한 세대’라는 말이 있다. 한 세대만 전대의 지식이 전달되지 않으면 어떤 문명도 야만의 상태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번성과 멸종도 한 세대에서 멀지 않다. 한 세대만 아이를 낳지 않으면 종족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지금 일본에서는 경제적 번영은 나중이고 종족의 운명마저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한 때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이 왜 맥을 추지 못하는 가에 대한 해답은 멀리 구할 필요가 없다. 집이나 나라를 막론하고 아이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으면서 노인들만 드글거리는 곳에서 활기를 찾기는 힘들다.
한 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후진국이던 일본이 불같이 일어서던 시절이 있었다. 백제와 중국, 조선으로부터 선진문물을 전수받은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 문물을 재빨리 수용하더니 동양 제일의 강국으로 컸다. 청일전쟁, 노일전쟁을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짓고 한반도와 만주까지 삼키더니 중국 본토마저 쳐들어가 해안 지역 대부분을 장악했다.
1941년 진주만 기습 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1945년 원자탄을 맞고 패전하기는 했지만 전후 한국전과 월남전을 계기로 다시 일어서 자동차와 전자 제품을 비롯한 세계 시장을 석권하며 기염을 토했다. 1989년까지 계속된 장기 호황으로 주식과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욱일승천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르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그 후 20년째 계속되고 있는 불황의 여파로 일본인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경제 부흥에 대한 의욕도,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없다. 최근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과 생산중단, 세이부 백화점 폐점, JAL 파산 등 과거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지는 것이 맥 빠진 일본인들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떠오르는 일본의 국력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정비례해왔다. 메이지 유신 당시 3,000만 남짓 하던 일본 인구는 그 후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2005년 1억2,900만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장기 저출산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일본 인구는 40년 후에는 1억, 100년 후에는 4,000만으로 줄어들게 된다. ‘일본은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것’이란 예언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다행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부부 당 2.1명의 높은 출산과 이민으로 인한 인구 유입으로 착실한 인구 증가가 예상된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OECD 여러 나라 중 거의 유일하게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자동차와 전자 제품 등 각종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뜨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그러나 그 한국은 바로 20년 전 일본이 그랬던 것보다 더한 저출산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세월이 가면 한국은 일본보다 더 빨리 더 맥 빠진 사회가 될 것이 뻔하다. 일본의 낙조가 한국에 반가운 소식만은 아닌 것 같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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