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면 수도분할은 안 된다 “통일 후를 생각하면 행정중심 도시는 서울이어야 한다 “세종시는 행정 비능률과 낭비를 초래한다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은 충청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비합리적 입법이었다.
이번 세종시 백지화를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 주류 측의 논리에 동조하는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아마 이렇게 얘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
충청도 표의 도움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미 좀 봤다고 했다니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지난 정권에서 ‘잘못’한 결정을 경제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다시 바꾸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국민토론 논리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자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지금 이 시간에 바깥에서 보는 이 세종시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좀 복잡한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오늘은 이 좀 복잡한 생각을 미주 한인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려 한다.
그동안 미국 큰 대학들의 경영대에서는 한국 출신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들의 교수임용을 꺼리는 학과장들이 많아졌다. 그 이유가 이렇다. 서울대를 비롯한 본국 대학들에서 미국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을 국내에서 뽑을 때 최종 결정을 서울의 신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 거의 다 된 한두 달 전에 내리는 것이다. 너무 늦어 해외 박사들이 꺼리면 이렇게 안할 것인데, 결국엔 국내에 자리 잡고 싶은 젊은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국내에 자리가 생기면 가게 되니까, 해외에서의 문제는 국내 대학들에서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미국 대학들의 봄학기는 1월 중하순에 시작한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 남짓해서 담당과목의 교수가 떠나버린다고 생각해 보라. 학생들의 피해가 막심하고, 학과장들도 새로 교수나 강사를 이 과목들에 충당하려면 혼이 나고, 이런 걸 자주하는 대학들이 주는 인상은 별로 좋지가 않다. 그런데 미국이 큰 것 같지만 각 분야별로 보면 학과장들끼리의 네트웍은 아주 좁고 가까워서 소문이 한 번 나면, 아니, 같은 소문이 몇 번 다른 대학에서도 겪는다면 이것은 일반 정보가 되어버린다.
대학엔 좋은 학생들을 배출해서 그 졸업생들이 다른 학교의 교수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젊은 조교수 시절 학위논문 지도 교수했던 은사들과 공동 연구도 하고 하는 그 루틴이 있다. 이것이 잘 되어야 어느 대학이건 학위 프로그램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출신 학생들은 이렇게 떠나니 조교수 임용에서는 물론 박사학위 학생 모집에서까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떠나는 이야 고국에 돌아가 좋은 생활을 하지만, 그 이후에 오는 학생들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칼럼 제목의 근본 이슈가 여기에 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본국에서는 한 사람이, 또 어느 조직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원칙을 지키고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가의 문제보다는, 옛날은 잊고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속된 말로 순발력이 너무나 중요한 덕목이 되어 있다. 위에서 요약한 경제와 효율문제, 국가백년대계의 이슈는 세종시 입법이 여야 합의로 가결된 2005년 3월3일 이전에는 토론할 수 있는, 아니 치열한 토론을 했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나라의 격을 생각하고, 충청도민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라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는 경제 경영학도이지만, 세종시 문제는 이제 경제와 효율의 문제가 아닌, 더 중요한 문제가 그 근본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인들은 너무나 머리가 좋아서, 필자는 존경의 정도를 넘어 전율을 느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좋은 예가, “사람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데, 난 약속을 못 지킨 적은 있어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한 DJ의 공식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 이후부터 필자는 정치인들에게 무한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도 보라. MB는 “세종시 문제에 원안고수를 약속했던 대선 당시의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순발력인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여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다. 우리 정치사에도 자기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고 그 당시의 불이익을 감수한 이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들은 국민들에게 잊혀 버리기가 일쑤였다. 우리 국민들은 똑똑하고, 머리가 좋고, 그래서 경제발전은 잘하지만, 먼 장래를 보고 약속을 지키는 면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보여 지고, 그래서 나라의 격을 올리자고 하는 얘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복잡해지는 것이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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