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오클랜드에 사는 사돈이 집에 와서 또 며칠을 늘어붙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저년 언제가지?
안 사돈끼리 마음이 통하면 재미있고 얼마나 좋아? 그런데 이 사돈은 그렇지 않다. 며느리가 이뻐야 사돈도 이쁘지. 그 에미에 그 딸이라고 사돈은 한술 더 뜬다. 큰 딸이 늦게 결혼한 동생을 생각해서 아파트 렌트비 아껴 그동안 돈 모으라고 남아있는 방 내준 것이 잘못이었다. 사돈은 염치도 좋지, 자기 딸이 먹는것까지 돈 한푼 내지않고 시누이 집에 얹혀사는 줄 뻔히 알면서 한번 왔다하면 이삼일을 돌아가지 않고 완전히 호텔 손님노릇을 한다. 문앞에 벗어놓은 신발 한번 가지런히 챙기는 법이 없고 며느리가 저녁 먹고 부엌으로 나갈 기색이면 시어머니 일 뺏는 것은 불효자가 하는 짓이라고 자기 딸 설거지도 못하게 한다. “늙은이가 운동을 해야 오래사는 것도 모르나? 너는 그냥 가만 앉아 있어라” 그러면서 할머니가 설거지를 끝내는 동안 둘이서 TV를 보면서 야금야금 과일만 깍아먹는다. “사돈 들어올 때 빈손으로 오지말고 우리 커피 한잔씩 부탁해요. 나는 설탕 한숟갈 더 넣는 것 알지요?” 아들놈은 그 소리를 듣고 쪼르르 부엌으로 달려와서 “어무이요 커피래요. 나까지 합이 3개요.” “알았다.”
못난놈이 아들놈이지. 어릴때부터 매를 들고 키웠는데 그러지 않을 줄 알았던 놈이 결혼하더니 그만 마누라 말이라면 껌벅 넘어간다. 저런놈이 마누라 벼게밑 송사를 어떻게 할까 은근히 걱정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들놈이 “어무이요, 우리 이사람 요즈음 살이 빠지고 많이 홀쭉하네? 눈치 안보게 마음편이 있도록 해주이소.” 하고 말했다. 마음편히 안한게 뭐 있느냐고 따지면 목청 올라갈 것이고 할머니는 그래 알았다 했더니 “당신 어무이 말 잘들었제? 이집이 어디 남이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당신 먹는거 뺏아먹지 않으니까 혼자 싫컷 요리해 먹어라.” 혼자 요리해서 먹어라? 아들놈 말하는 것 좀 보소. 저놈 저렇게 하는짓 큰 딸이 알면 당장 내보내라고 할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자니 참 기도차지 않았다.
중매 선 수빈이 보살은 LA에 잠깐 갔다 오겠다더니 반 년 넘도록 절에 콧베기도 보이지 않는다. 만나기만 해라 뺨때기 석대부터 철썩 때려주고 따져봐야겠다. 할머니는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벼르고 있었다. 남편 일찍 사별하고 혼자사는 소녀 과부라기에 나이40이 다 된 아들 딱히 내세울것도 없었고 홀애비는 이가 서말이고 과부는 은이 서말이라는데 아들이 원해서 덜렁 식을 올려주었더니 세상에! 이런 수도 있나? 며느리는 오클랜드에 자기 어머니와 언니가 버젓히 살고 있으면서 그야말로 시집오면서 달랑 빤스 하나만 입고 들어왔다. 미친놈. 아들놈 눈이 삐었지. 선 한번보고 그 자리에서 대뜸 좋아라고 결혼하겠다고 날뛰는 놈이 어디있나.
며느리 고향은 제주도였다. 그래서 한번은 할머니가 “야 너 엄마 옛날 제주도에서 보재기질 했제?” 했더니 “보재기는 누가 보재기 했다고 그래요? 우리 엄마는 보재기 안했어요.”하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재기는 경상도 말로 해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 제주도에서 여자가 굴 따고 미역 따는 보재기질 안했으면 뭐해먹고 살았노?” “우리 엄마는 보재기 안했어요. 일본으로 다니면서 밀수해서 먹고 살았어요.” 뭐라고? 그럼 역적이 아닌가. 밀수가 무슨 자랑이라고 떳떳하게 자기 엄마가 밀수질 했단다.
사람이 바르게 살아야지 그런짓 하고 살아서 그런지 아무튼 그 동네에서 싸가
지 없기로 소문난 여자가 바로 사돈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절에 갈 때 남의 부부 차 얻어타고 가면서 “나는 멀미가 심해서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젊은 신혼부부 여자를 뒷좌석에 앉게하고 일년 열두달 차타고 오고 가면서 브릿지 값을 한번 내나 절에가서 음식 다 해놓으면 싱겁네 짜네 하며 수상한 목소리로 속닥거리며 눈알을 굴리기 예사였다.
한번은 시아버지 제사 음식 준비하는 것을 보고 제사라는게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 먹으라고 지내는건데 이다음 너희는 아예 절에 갖다 주어라. 요즈음은 절에 다 안치하드라면서 시어머니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 그러면서 바퀴벌레 한마리를 죽여도 살생 한다면서 관세음보살하고 염불하듯이 길게 뽑는 사돈이라는 여자가 얼마나 밉겠는다.
며느리는 TV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아주 숨죽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 연기 참 좋다!”하고 완전히 무드깨기 일쑤고 아슬아슬한 장면에 연기 잘한다는 말은 왜 나오나? 사돈은 사람이 치고박고 죽는 무서운 장면에 저거 다 가짜야, 하고 초치기 예사였다. 그 뿐인가. 커다란 집 지니고 사는 시누이 들으라는 듯이 미국에 와보니 이상하게 학교에서 공부못한 사람들이 장사는 잘하고 살드란다. 장사하는 사람이 머리좋은 능력이 없으면 장사 못하는 법인데 저잣거리 콩나물 장수처럼 아무나 장사하는 줄 알고 겁죽거리는 꼴이 할머니 보기에는 정말 가당치 않았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양반 혈통을 가진 참으로 어진 사람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식모가 집에서 일년만 같이 지내면 평생 남의 집살이 할거냐면서 무조건 미용기술학원에 보내주었고 그동안 4명이나 모두 독립시켜준 할머니였다.
경우바르고 후덕하기로 소문난 할머니는 근본부터 글러먹은 사돈 꼬락서니가 누가 말처럼 말로 백번이나 해줘도 바로 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차피 저런 사람 싫은 것 내색해도 눈치 못채는데 나만 죄 짓는다고 그냥 속앓이만 하는데 그날 아침 뜻밖에도 밖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좋아라고 이때다 하고 사돈 들으라고 큰 소리로 “아이고 가라고 가랑비가 내리네요.” 했더니 “아닙니다 있으라고 이슬비네요.” 아이고 시어마시야, 저년 언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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