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글 인터넷에서 “결혼 서약문”이라는 말을 검색어로 찍어넣으면 온갖 신혼 부부들의 가슴 찡하게 만드는 서약문들이 뜬다. 옛날 판에박은 서약문이 아니라 사랑을 스스로 표현하는 서약문들이라 TV 연속극에서 입도 못맞추던 시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문제는 이 서약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잘 지켜지는가에 있다. 한국은 1997년 IMF 사태 이후 꾸준한 이혼율의 증가로 이 약속들이 깨지고 있다.
아들이 대학으로 떠난 이후, 혼자 남게된 딸의 성적이 갑자기 방황했다. 그래서 큰 모험을 했다. 만약 오빠의 SAT 성적만큼 내면 원하는 새 토요타 셀리카 GTS 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딸에게 공부하는 큰 동기를 불어넣었다. 드디어 성적이 올라 차를 사줘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안사준다면 대학을 지원않겠다는 형국이었다. 고등학생이, 그것도 여학생이 스포츠카를 몰고다닌다고 생각하니, 참 난감했다. 그래서 보험 에이전트에게 십대의 자동차 보험료를 비싸게 책정한 팩스를 한장 보내달라고 했다. 이 팩스로 딸을 달래고 달래서, 혼다 어코드 쿠페 (Coupe)로 대신할 수가 있었다. 대학 4년 동안은 차를 아예 집 차고에 두고 갔었다. 나중엔 자신의 차가 셀리카보다 좋다고 했다. 약속을 약간 틀어서 지켰지만, 더 나은 결과를 초래했다.
“약속”하면 또 한가지 생각나는 일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장교 보수 교육을 받을 때였다. 훈련 받은 지 네주가 지나서 주말이면 외출이 허용될 줄 알았는데, 사단장의 지시로 취소가 되었다고했다. 그때, 서울 대학교 출신 소위들이 급히 막사 뒤편에 모여서 “무슨 일이 있어도 외출을 나가야한다고 말하기”로 약속을 했다. 점심 식사후, 연대장이 이 소위들을 연병장에 모아 놓고 자신이 약속했던 외출이 취소된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외출나가야 하겠다는 사람이 있느냐? 손들어봐라.” 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라는 연병장 뒤에서의 약속이 생각나서 손을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였다. 그 즉시, “오늘 내가 새까만 소위에게 이렇게 면박을 당했다.”면서 개새끼 소새끼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의 엘리뜨들이 굳게 약속했던 일이 깨지는 것을 맛본 허무한 순간이었다. 그 후, 그 연대장과는 아주 친하게 지냈고, 사단장의 지시라 어쩔 수 없는 그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요즘, 한국 내에서는 세종시 원안 수정 문제로 시끄럽다. 충청도 표가 간절했던 당시 노 무현 대통령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반대했다. 이제는 박 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약속이행론을 내세우며 충청도를 부추기고 있다. 충청도하면, 충청북도 어느 시골 마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리적으로는 금강 건너 XX면에 더 가깝지만, 금강 남쪽에 있어서 YY면에 속해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XX면으로 장을 나가자면 금강을 건너야하는데 건널 다리가 없다. 여름이면,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너간다. 너무 외진 곳이라 육이오 때, 공산군도 안들어간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 금강을 마을에서 바로 건너는 다리를 놓아준다는 공약따라 표가 몰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철근 콩크리트 다리가 없다.
정치판에 난무하는 공약 (空約) 때문에 국민들만 농락당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박 근혜 전 대표의 지론에도 일리가 있다.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라고 했던 이 명박 대통령의 정치력이 아쉬운 면도 있다. 사업에는 내부 결정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정치에서는 외부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정의 동반자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한지붕 두 살림을 보게한다. 이에 덩달아 야당은 부채질하고 있다. 국민들이 정신차려야한다.
미국에서도 중앙 정부를 그 어느 주도 아닌 독립적인 워싱턴 DC에 두고 있지 않은가? 약속도 중요하지만, 합의로 더 좋은 안을 도출해내는 정치력이 더 중요한 때라고 본다. 각자가 옳다고해도, 누가 더 국민들을 잘 설득하느냐하는 것이 큰 정치인으로 향하는 길이고, 민주주의는 서로 주고 받는 협상의 묘미가 있어야한다. 자기만 절대적으로 옳다면, 혼자 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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