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이상의 사망자와 수백만 이재민을 낸 아이티 대지진 참사에 전 세계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상 최대의 구호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참사 규모가 워낙 커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가난이 평생의 굴레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가해진 또 한 차례의 가혹한 시련을 보며 수많은 지구촌 가족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 돈 몇 푼으로 이들의 고통을 보듬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연민이 이들을 아이티 돕기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념과 종교, 그리고 경제적 능력의 구분이 없다. 연민과 인류애는 이념과 신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많은 지구촌 가족들이 한마음이 돼 아이티 돕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몇몇 인사가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독설을 퍼부어 빈축을 사고 있다. 극우 라디오 진행자인 러시 림보와 복음주의 우파를 대표하는 팻 로벗슨 목사가 그들이다.
마치 ‘오바마 때리기’가 필생의 과업이라도 되는 양 지난 1년 사사건건 그를 비판해 온 림보는 오바마가 아이티 돕기에 신속히 나선 것을 흑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한 기회주의로 매도했다. 팻 로벗슨 목사도 자신의 TV 프로그램에서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 것은 악마와 결탁했기 때문”이라며 “아이티가 악마와 손잡은 후 저주가 이어지고 있다”는 망언을 했다.
림보의 발언은 계산된 것이다. 자신의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설 때마다 그에 비례해 영향력이 공고해 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노리는 것은 다중의 공감이 아니라 열렬 지지자들을 더욱 더 자신의 기치 아래 결집시키는 일이다.
림보는 세속적 이득을 추구하는 인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로벗슨 목사의 발언은 명색이 ‘종교인’이라는 점에서 더 비난 받아 마땅하다. 로벗슨은 미국의 복음주의 우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의 신학관은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묵시적 종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종교의 발흥을 종말의 징조로 보고 유엔을 중심으로 한 협력체계를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악마적 음모의 증거로 본다. 복지제도라는 개념에도 혐오를 드러낸다.
그런데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 가운데는 로벗슨의 신학관을 따르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입에서는 로벗슨의 독설과 비슷한 발언들이 자주 쏟아져 나온다. 몇 년 전 설교시간에 쓰나미 참사를 “예수를 믿지 않아서 생긴 재앙”이라고 했던 한 대형교회 목사가 대표적이다. 로벗슨이 부시의 당선을 일찌감치 점쳤다며 평소 그에 대한 존경의 염을 드러내 온 이 목사는 1년 후 카트리나 참사가 났을 때는 “동성애에 대한 심판”이라고 설교해 또 한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재해를 죄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복음주의 극우 목사들의 이런 인식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는다. 신약에는 예루살렘에서 큰 집이 무너져 내려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 사건이 기록돼 있다. 사람들이 예수에게 “저 사람이 죽은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조상의 죄 때문인가”라고 묻자 예수가 “그것은 죄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답한 것이 기록돼 있다. ‘믿음 좋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무수한 비극과 참사에 대해서도 이들 목사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복음주의 우파는 툭하면 음모론을 들먹이는 정치적 우파와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것은 모호함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난해한 문제들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려 든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부정된다. 인간사도 불가해한 부분이 많은 법인데 신의 영역인 섭리를 너무 쉽게 해석하려는 태도는, 이들이 거느린 추종자 수와 영향력을 감안할 때 위험스럽기조차 하다.
믿음의 본질은 사랑과 겸손을 잊지 않는데 있다. 특히 설교를 위해 강단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이것이 요구된다. 비판에 발끈하기에 앞서 “나는 예수를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간디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왜 날로 늘어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 봐야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