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옌’레스토랑 그룹 전애린 대표 성공스토리
이유 없는 성공이란 없다.
그게 한 평 남짓한 구멍가게가 됐든 수백 수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됐든 공짜로 그 성공을 거머쥔 사업가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처음에야 다들 ‘운이 좋아서’ ‘어떻게 하다보니’ 라고 겸손해 하지만 30분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십중팔구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성공 스토리가 쏟아져 나온다. 맞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그 남자, 그 여자의 성공 이면에는
영락없이 눈물 젖은 빵과 불면의 밤들과 더 이상은 갈데 없다고 생각되는 낭떠러지 끝 어딘가에 수 차례 선 경험과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옌(Yen) 레스토랑 그룹 전애린(51) 대표 역시 이 성공 공식에서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돌도 되지 않은 맏딸을 들쳐업고 마켓 한켠에서 우동을 말기 시작,
20년만에 LA 카운티 일대 7개의 고급 일식 체인을 거느린, 연매출 700만달러에 이르는 레스토랑 그룹 수장 자리에 오른 그녀의 20년 사업 스토리는 당연히 굴곡지고 그 구비구비 애틋한 사연과 무용담들로
빼곡하다. 그러나 타고난 배짱과 비즈니스 감각으로 그녀는
그 굴곡을 되레 성공의 반석으로 바꿔놨고 결국 빛나는 정상에 올랐다.
지난 주 어느 오후, 새로운 사업 구상 차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 막
돌아온 전 대표를 그녀가 가장 최근에 오픈한 레스토랑 ‘린’에서
만나봤다. 시차 적응으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기분 좋게 날려보낸 그녀와의 인터뷰는 활기찼고, 신선했으며 아찔했다.
▲마켓 한쪽 구석에서 열차우동으로 시작, 20년만에 LA카운티 일대에 고급 일식당 7개를 소유한 ‘식당 재벌’로 거듭난 옌 레스토랑 그룹 전애린 대표가 최근 LA 한인타운에 오픈한 럭서리 분식점 ‘린’에서 포즈를 취했다.
#열차 우동은 꿈을 싣고
그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0년 여름이었다.
첫 딸을 낳고 7개월이 채 안된 당시 가든그로브 가주 마켓 한켠에 일식 요리사였던 남편과 함께 스시 집을 차린 것이다. 그러나 기대처럼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열 아홉에 브라질로 가족이민을 가 학교 다니고 부모님 사업을 돕다 결혼과 함께 도미, 뉴욕 생활 2년을 거쳐 어렵사리 자리 잡은 LA에서의 첫 비즈니스였는데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생각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동대문 시장에서 먹던 냄비우동이었단다.
“어려서부터 워낙 우동을 좋아했어요. 사실 요리를 잘하거나 즐겨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우동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거든요.(웃음) 그래서 그 우동 레서피를 기본으로 수 없는 시행착오 끝 지금의 우동을 개발했습니다. 당시 손님들이 먹어보고는 기차 타기 직전 대전 역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라고 해서 열차 우동이란 상호를 지어줘서 우리 집 우동은 아직까지도 열차 우동으로 통하죠.”
열차 우동이 인기를 끌면서 매상은 승승장구했고 파리 날리던 매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 평균 200그릇의 우동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전 대표의 성공으로 당시 새로 마켓이 오픈하면 마켓 한 켠에 우동코너를 여는게 유행처럼 돼 버렸단다. 요즘으로 치자면 요거트 열풍 저리가라였다고.
잘 나가던 가게 뺏기다시피 하기도
여세를 몰아 2년 뒤 LA 베벌리 가주마켓 오픈과 함께 열차 우동 2호점을 오픈하게 된다. 그때가 둘째를 낳고 3개월도 안된 때였는데 돌도 안 된 딸이 1호점에서 놀고먹다 하다 겨우 보모에게 맡길 때쯤 되니 둘째가 2호점에 터 잡게 된 것이다. 육아에, 비즈니스에 다른 워킹맘처럼 전 대표 역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눈썹 휘날리며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열차우동 2호점을 오픈한 1992년 베벌리 가주마켓 내 매장.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비즈니스가 고비 없이 승승장구만 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없다. 당연하게도 ‘잘 나가던’ 전 대표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마켓 업주와 리스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 생겼고, 업주의 의도가 무엇인지 확증은 없지만 결국 가게만 뺏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LA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단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꾸려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때가 94년 여름. 전 대표는 강남 부촌 한가운데인 역삼동에 ‘우동이네’라는 우동&롤 집을 열었다. 당시 일식 우동과 롤 전문점이라는 컨셉은 새로웠고 전 대표는 당시 우동이 2,000~3,000원 정도였는데 우동 스시(롤) 콤보를 배짱좋게 1만원을 받았다. 일견 모험처럼 보이는 전략은 주효해 가게는 1년도 채 안돼 역삼동 일대의 명물이 됐고 순수익만 500만원 이상을 올리는 알짜 가게가 됐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전 대표의 몫이 아니었던지 그 가게 역시 계약상의 문제로 건물주와 티격태격 끝 1년도 안돼 다시 LA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우동과의 질긴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LA 한남체인이 오픈하면서 그녀에게 우동가게 오픈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는 다시 LA에서 재기에 성공한다.
년 전 옌 레스토랑 전 직원들과 송년모임을 가진 전(맨 왼쪽) 대표.
#더 크게, 더 높이 날다
그렇게 다시 그녀의 사업은 안정세로 들어섰다. 그러던 97년 여름, 남편과 함께 우연히 윌셔 길을 따라 샌타모니카를 향해 드라이브하다 UCLA 인근에서 맘에 딱 드는 식당 자리를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앞 뒤 재지 않고 바로 리스 계약을 ‘감행’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두 푼의 돈이 오가는 장사도 아닌데 걱정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연신 웃기만 한다. 도대체 그녀의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타고난 건가?(웃음) 지금도 주변에선 그만하면 쉴 때도 됐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일을 벌리는 이유는 돈 흐름이 보인다는 거예요.(웃음) 돈이 지나가는 게, 새로운 사업구상이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데 어떻게 쉬겠어요?”
그래서 그 해 9월, 현재 옌 레스토랑 그룹의 모태가 되는 ‘캘리포니아 롤 & 스시’ 1호점을 오픈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오픈과 동시에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주류사회 어디를 가나 한인이 경영하는 일식 레스토랑을 만나기가 쉽지만 당시만 해도 롤 전문점 자체가 생소하던 때였다. 1년도 채 돼지 않아 월매출이 10만달러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2년 뒤엔 로스펠리츠에 2호점도 오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0년 뒤부터는 오픈 시점을 기억하기 힘들만큼 오픈이 줄줄이 이어졌다. 레돈도비치에 이어 LA 다운타운, 라치몬트, 스튜디오 시티, 롱비치, 센추리시티 등 부촌이면서도 젊은이들이 모이는 트렌디한 로케이션이라면 어디서고 캘리포니아 롤 & 스시가 들어섰다. 이중 센추리시티와 라치몬트 등 2곳은 팔았지만 7년간 쉼없이 레스토랑 오픈과 경영에만 매달린 셈이다. 이처럼 무섭게 일에만 매달린 데는 그 사이 이혼이라는 가슴 아픈 개인사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혼은 단순히 불행한 개인사로 끝나지 않았다. 이미 한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캘리포니아 롤 & 스시’를 전 남편이 사용하게 되면서 그녀는 미련 없이 그 상호를 포기하고 ‘옌’(Yen)으로 교체했다. 그래서 현재 한인타운 소재 ‘린’을 제외한 그녀 소유의 5곳의 레스토랑은 ‘옌’이라는 상호를 사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롤 & 스시’로 대박
이혼 아픔 겪은 후 ‘옌’으로 독립
럭서리 분식점‘린’타운에 오픈
올 봄 컬버시티 진출… 새 도전
#인사가 만사, 2% 다른 경영
도대체 이 여자, 어떤 ‘비법’으로 이 곳까지 온 것일까.
“내가 비즈니스 보는 안목이 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아무리 좋은 목이라도 우리 식당에 안 맞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죠. 그걸 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그러나 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녀 사업 성공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다름아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아주 오래된 고전 명제를 철저히 믿고 지켜왔다는데 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현재 옌 레스토랑 그룹 내 종업원 수는 파트타임까지 포함, 100여명에 이른다. 이중 15년 넘게 일한 이들만도 10여명.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대부분인데 식당보조에서 시작, 이제는 어엿한 주방장이 된 이에서부터 매니저까지 오른 이들도 많다. 또 일부에게는 식당 지분을 나눠주기도 했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대가를 준다는 그녀의 경영철학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뿐 아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는 그녀의 신념답게 셰프를 뽑든 주방보조를 뽑든 주방장에게 전권을 일임한다. 그저 그녀는 종업원들이 필요하다는 물품 정도만을 배달할 뿐이란다.
“그렇게 믿어주면 더 열심히 일하는 게 사람 심리죠. 그래서 어떤 경우엔 이야기하다 보면 누가 종업원이고 누가 주인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예요. 종업원들이 제게 식자재 아껴 쓰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니까요. 지난해엔 매년 하던 연말파티도 경기가 안 좋다고 자진해서 규모를 줄이더라고요. 돈 아껴줘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쁘잖아요?”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이제 이룰 만큼 이룬 듯도 싶은데 그녀는 여전히 허기져(?) 보였다. 아직도 목적지까지 꽤 긴 여정이 남아 있는 순례자처럼 전 대표의 발걸음은 바쁘다.
최근 그녀는 새로운 비즈니스 오픈을 앞두고 있다. 흑인 부촌인 컬버시티 인근 폭스힐 소재 웨스트필드 샤핑몰 안에 6,000스퀘어피트 규모의 노래방이 딸린 일식당을 올 봄 연다. 지난해 가을 한인타운에 럭서리 분식점 ‘린’ 오픈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꽤 큰판을 벌린 셈이다.
20년을 달려왔건만 전 대표의 여정은 이제 시작인 듯 싶다. 목적지를 코앞에 둔 여행자의 눈빛이 이럴 리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식당 이야기,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초롱초롱해지는 그녀의 눈빛은 이제 막 여행의 출발선에 선 ‘오버 더 레인보우’가 끝내 궁금한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눈빛을 닮았다.
옌 레스토랑은 트렌디하면서도 심플한 인테리어로 젊은 여피족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글 이주현 기자·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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