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류사회에는 환자들의 환우회 모임 성격인 특정 질병의 환자 서포트 그룹이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나 기구 등을 제공하며 질병 관리에 도움이 되는 세미나나 서포트 모임을 개최하기도 한다. 암이나 만성질환, 특정 질병 등을 진단 받으면 처음에는 누구나 당황스럽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기도 하고,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할까, 다른 환자들의 증상은 어떤지, 무슨 약물을 복용하나, 의사는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등 여러 질문들이 생긴다. 환자들의 서포트 그룹은 이런 여러 가지 질문과 질병에 대한 정보도 얻고,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 경험을 나누며 서로 격려해 주며 병을 이기고 관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팽창하고 있는 한인사회의 규모와는 다르게 한인을 대상으로 한 환자 서포트 그룹은 극히 적어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서포트 그룹(환우회)이 있어도 존재 자체를 몰라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환우회들을 찾아보는 한인 환자들도 많다.
환자·가족·간병인
60여명 모임 결성
식생활·약물복용
경험담·고민 등
서로 나누며 격려
병관리에 큰 도움
그런 의미에서 최근 결성된 내셔널 파킨슨병 재단 오렌지 카운티 지부 산하 코리안 아메리칸 파킨슨병 서포트 네트웍(Korean American Parkinson Support Network, KAPSN)의 활동은 매우 기대된다. 지난 9월 파킨슨병을 주제로 환자와 가족, 간병인들을 대상으로 첫 세미나를 성황리에 개최한 후, 서포트 그룹의 공식적인 첫 모임이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돼 매달 둘째 주 금요일 모임을 활발히 갖고 있다.
소위 ‘힘든 병’에 걸리면 환자 스스로가 의사가 될 수밖에 없다. 병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는지를 관심 있게 정보를 찾게 된다. 다른 환자의 경험이 내게도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환자의 경험담을 통한 정보 수집은 자신의 병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현재 KAPSN에 등록된 환자 및 가족, 간병인 등 회원 수는 약 60명. 지난 8일에는 연초라 회원들은 조촐하게 7명이 모였지만 서로의 경험담과 질병 관리에 대한 정보들을 나누었다. 각자의 발병 시기, 약물복용, 식생활 등을 서로 질문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1시간30분은 빠듯할 정도로 훌쩍 지나갔다.
KAPSN의 코디네이터 리비아 김씨는 “파킨슨병과 치매를 함께 앓고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주류사회의 서포트 그룹을 많이 다녀왔는데, 정말 큰 힘이 됐다”며 “우선 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많은 정보와 도움을 얻고 배웠다. 하지만 한인들이 그런 좋은 정보를 놓치는 것이 안타까워 한인 서포트 그룹을 만들게 됐다”며 결성 계기를 설명했다.
#한인 환자들의 사례들
파킨슨병은 떨림(진전, tremor)이나 근육의 강직(팔 다리 등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증상), 몸동작이나 움직임이 느려지는 서동, 자세의 불균형 등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으로 뇌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dopamine)의 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병이다. 사실 진단도 참 어렵다.
진단을 받기까지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파킨슨병 관련 한인 의사도 부족한 실정. 대부분 환자들은 처음 진단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생했던 경우가 많다. 오십견이나 다른 병명으로 진단을 받거나 병명을 제대로 진단받지 못해 애태우는 경우가 많다.
김씨(여·LA 거주)는 5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지난해 4월 손이 떨려 병원을 찾아갔다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LA에 살지만 OC 풀러튼에서 열리는 KAPSN 모임을 나오기 위해 택시까지 타고 올 정도로 열성을 보인 그녀의 고민은 ‘약을 복용해도 되나’ 였다.
“처음에는 파킨슨병이 생소한 병이라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의사를 찾아다니고, KAPSN 같은 서포트 그룹에서는 많은 정보를 얻게 됐다. 특히 병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 앓아온 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니 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다른 환자들의 약 복용 사례를 들으며, 고민되는 부분에 대해 한시름 놓는 표정이었다.
또 대부분 한인들은 약물 복용에 대해 큰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파킨슨병은 계속 진행하는 병이다. 때문에 약물 치료의 조절이 매우 중요하며 약물 치료는 병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심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환자 마음대로 약물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리비아 김 코디네이터는 “85세 어머니도 처음 약이 너무 독해 부작용이 나타나는 등 고생한 적이 있다”며 “위장장애나 변비 등 주치의와 약물 복용 후를 꼭 상담하고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의사에게 말해 적절한 조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11월 모임에서 열린 운동 세미나에서 KAPSN 회원들이 이호석 작업치료사(맨 오른쪽)의 지도에 따라 손운동 동작을 따라 하고 있다.
#도움 되는 사이트
-미국 내셔널 파킨슨병 재단
(National Parkinson Foundation)
(800)327-4545
-서울대학교 병원 파킨슨센터
-미국 이상운동질환협회:
www.wemove.org/par.html
매월 둘째 금요일에 모임 개최
12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65세의 김씨(남, OC 거주)는 이미 반쯤은 의사가 됐다. 그는 “미라팩스, 안티락틴, 컴탄, 등 7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약은 먹으면 콩 음식과 안 맞아 고생”이라며 경험담을 얘기했다. 파킨슨병 환자들을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다.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파킨슨병 환자들은 변비 때문에 많이 고생한다. 또 우울증이라든지, 침 삼키기가 어려워진다든지(연하장애)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김씨는 “약은 시간 맞춰 철저히 복용하고, 할 수 있으면 일상생활이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생활을 규칙적으로 잘 관리하는 것이 병 관리에 도움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민간요법은 전혀 하지 않으며, 몸이 이상하면 바로 의사를 찾아가 해결책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18년간 파킨슨병과 싸워온 더글라스 김씨(세리토스 거주)는 몸에 마비가 왔어도 원인을 몰라 첫 3년간은 병명을 알지 못한 채로 지냈다. 김씨는 “병명이나 몸에 마비가 온 것의 원인을 찾지 못해 3년간 이 의사, 저 의사 찾아 다녔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며 “95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토로했다.
파킨슨병으로 뇌수술까지도 받은 그는 수술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수술로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경험을 밝혔다. 그가 받은 수술은 DBS(deep brain stimulation) 수술로 전기 자극을 해주는 장치를 뇌에 삽입하는 수술. 그는 “의사가 약을 잘 먹고 관리하면 20년도 거뜬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며 밝게 웃었다.
또 다른 김씨(남, LA 거주, 60세)는 99년 진단을 받아 벌써 10여년 넘게 파킨슨병을 관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사를 찾기 어려워 한국에서 진단을 받고 처방약도 받아왔다. 김씨는 “약을 안 먹으면 손이 막 떨리고, 환상을 보는데, 집 거실에서 동네 아이들이 난동을 부리는 환상이 보여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며 자신의 겪은 증상을 얘기했다.
파킨슨병 환자의 상태는 환자마다 물론 다르다. 환자들은 일단 파킨슨병이라고 하면 너무 대단한 불치병에 걸린 양 하는 주변사람들의 태도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한다. OC의 김씨는 “쉽게 말해 아파보지 않으면 보통사람들은 환자의 고통을 모르기 쉽다. 나로서는 최대한 빨리 걸으며 가는 것이지만 주변에서 빨리 좀 오라고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가 된다”고 말했다.
#KAPSN 코디네이터 리비아 김
리비아 김씨의 어머니(85)는 파킨슨병과 치매 증상이 함께 있는 병명도 어려운 ‘루이 치매’(diffuse lewy body dementia)다. 김씨의 어머니 역시 진단을 받기까지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며 고생했다. 어머니 김안나씨는 떨림 증상은 없었는데 근육의 강직 현상이 아주 심했다. 천천히 걷고, 파킨슨병 환자의 특징적인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 모양을 나타냈다.
약물치료에 대해 김씨는 “처음 어머니에 대해 약물 치료 얘기가 나왔을때 언니와 다른 의견이었다. 나는 약물 치료를 찬성했고, 언니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의사가 약물치료는 당뇨의 인슐린과도 같다고 설득해 약물치료를 했는데, 빠른 약물치료는 증상 악화를 늦추는 효과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김씨는 “호스피스 케어는 죽기 직전의 환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불편한 환자의 일상생활을 돕는 등 장점이 많다”며 호스피스 케어를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2006년 어머니가 진단을 받고, 지난 2008년부터는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해 온 김씨는 “파킨슨병 한인 환자들의 모임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유용한 주류사회의 세미나도 함께 가며 정보를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KAPSN에서는 오는 25일 오후 6시 뉴포트비치 호그 병원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리는 파킨슨병 전문의 자넷 챈스박사가 진행하는 ‘파킨슨병 관리’세미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문의 (714) 317-7484
리비아 김 코디네이터.
약 복용·식사·활동량 등 일지 쓰면 도움
#환자들이 전하는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도움말
-이상 증상이나 의문사항 등은 의사를 만나기 전 미리 메모해 기록했다가 의사를 만날 때 활용한다. 특히 의사에게 질문할 때는 주저하지 않는다.
-약물 복용 시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는 꼭 의사에게 알려 적절한 조치를 받는다.
-약은 시간 맞춰 꼭 복용하고, 되도록이면 약물 복용이나 식사, 활동양등 병에 관한 일지를 쓰는 것이 도움 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 타이치 같은 운동도 도움 된다.
-일상생활은 되도록이면 최대한 독립적으로 하도록 한다.
지난 12월 열린 내셔널 파킨슨병 재단 오렌지카운티 지부(NPFOCC) 연말파티에 참석한 코리안 아메리칸 파킨슨병 서포트 네트웍 멤버들. 환자들과 함께 자원봉사자, 가족들, 간병인들이 소속돼 있다. (KAPSN 제공)
정이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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