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제대로 되려면, 위기가 오고 그것을 헤쳐 나가는 동안 정부나 사회, 개인은 비교적 분명하게 왜 위기가 왔는가 근본적 요인을 알게 되고, 정신 차린 대중의 공동인식으로 문제해결의 환경이 무르익고, 그리고 앞으로의 문제해결에 대한 준비가 되면서 정부의 리더십으로 새로운 법과 질서가 자리 잡게 된다.
이제 증권시장들은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일반 경제도 회복의 기미가 뚜렷하다. 실업률도 이제 더 이상 오르지는 않을 꺾이는 지점을 지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번과 같은 금융위기가 다시 오는 일이 없도록 사회 전체가 시스템 정비를 했는가 하는 문제에서 우리는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할 말이 없다.
별로 위기에서 배운 게 없는 것이다.
“망하게 둘 수 없도록 큰” 은행들은 거의 위기에서 벗어나 옛날보다 더 커졌다. 세계 10대 은행들은 이번 위기 이전에도 세계의 금융자산 중 거의 60프로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70프로나 된다. 은행들이 더 커지고 더 복잡해질수록 정부에서는 그들 은행들이 망하도록 둘 수가 없어지고, 은행들과 은행에 신용공여를 하는 경제 주체들은 이것을 알수록 더 신용 리스크에 과감해 진다.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구해 줄 것을 아는데 왜 조심하겠는가.
어떤 리포트들은 이번 미국과 영국 은행들 전체에 공여된 위기 대처자금의 사이즈가 연간 경제 전체에서 보는 산업 총생산의 4분의3에 달하는 거액이라고 한다. 이건 무서운 얘기인 것이, 이렇게 금융위기 대처에 필요한 돈이 점점 늘어 가면 다시 금융위기가 올 때 정부와 연방은행들이 감당할 수 없어지는 사이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여러 나라가 망할 수 있는 요인으로 가장 큰 것이 또 다른 금융위기다.
근본적 해결책은 그럼 무엇인가. 큰 은행들이 경제에 치명적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망하는 방법을 정부에서 법제화하는 것이다. 대형 은행들의 자산들은 분할해서 처분하는 방법들을 강구해야 하고, 지난번처럼 너무 복잡해서 아무도 그 피해액을 알 수 없는 파생상품들은 취급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자기 리스크도 외부에 발표할 수 없는 자산을 어떻게 취급하게 둘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국제금융 기구들에서도 내년 말까지는 구체적 해결책을 강구할 것 같지가 않고, 그래서 연방 감독기구들에서 은행들의 자본유지에 중점을 두고, 증자를 요구하고 유동성 확충을 강조하니 은행들에서 엄청난 자금을 비축해야 하고, 쉽게 비즈니스와 개인들에 대출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번 위기의 중심에 있는 신용 파생상품들에는 사실 큰 은행들이 즐기는 마약 같은 유혹이 있다. 사채 지불 불능 때를 대비한 파생상품들(거의 보험 같은 것들이다) 판매로 대형 은행들은 연간 100억달러 정도 벌어들인다. 그런데 은행들이 여기저기 다른 은행들끼리 거래하고 지불보증을 하다 보니 감독 당국들에서 그 구체적인 액수들을 알 수가 없게 복잡해져 버린다. 지금 이것에 대한 컨트롤은 조금 개선될 것이다. 상당한 양의 파생상품 거래를 투명성 있는 결제창구를 통해서 하도록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결제창구 역할을 하는 것도 비즈니스라 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의 잠재적 위험은 자산버블이 언제 또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번엔 또 아시아 쪽에서 자산버블 위험이 생기고 있다. 중국 같이 해외수출이 많은 곳에서 거기서 번 달러와 정부에서 불황대비로 마구 풀어놓은 돈들이 자산버블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긴 주택가격 버블이 아시아에서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고, 여기에 대한 대책들은 거의 없으니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경제가 불황에서 빠져 나오면서 소비 장려 위주로 된 정책들이 조장한 신용과잉이 시장에서 문제가 되면서 생길 위기의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미국 자체에서 자금이 부족해 해외에서 사주는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쓰고, 이런 빌리고 돈 찍어내고 하는 악순환이 오바마 정부의 마구잡이 예산낭비와 겹치면서 올 저성장 인플레가 우리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위기에서 교훈을 배운다는 것도 참 실행하기는 어려운 게 아닌가 한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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