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월맹을 협상의 자리로 이끌어 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직접적인 접촉도 했다. 중재자도 내세웠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돌아온 반응이라고는 이런 것이었다. “627년 동안 외세와 싸워왔다. 그러니 앞으로 128년을 못 싸울 것인가. 32년 전쟁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기가 질릴 노릇이었다. 30년 전쟁이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 월맹이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마침내 평화협상에 응해왔다. 워싱턴은 에버럴 해리먼을 대표로 파견했다. 그리고 대표단 숙소로 파리 중심가에 있는 호텔을 빌렸다. 주 단위의 예약으로. 월맹측은 아예 파리 교외의 한 저택을 리스 했다. 기간은 2년6개월.
이렇게 월남전 파리 평화회담은 시작됐다. 회담은 어느 쪽 승리로 결말지어 졌을까. 월맹이다. 시간 싸움에서부터 이미 미국은 지고 들어간 것이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파워다. 상대에 대한 정보다. 그리고 시간이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쟁의 경우 시간일 수도 있다.
나토군 병사들은 모두 시계를 가지고 있다. 탈레반은 시계가 없다. 그러나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한 나토군 장성의 말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니다.
월등한 화력도, 우수한 정보력도 의지력이 결핍됐을 때 결국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싸운다. 그 의지가 전쟁의 승패에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3만 명의 병력을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 오바마는 대테러전쟁의 중요성을 천명하면서 우리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들판에서도, 또 언덕에서도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론이 안 좋다. 워싱턴 인사이더들은 줄곧 증파불가의 시그널을 흘려왔다. 민주당 집권층 전체가 반대다. 그런 정황에서 내린 용기의 결단으로, 오바마 전쟁은 그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쟁은 그러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올바른 방향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당한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군 증파와 동시에 출구전략 전략을 발표했다. 철수시기를 2011년 7월로 밝힌 것이다. 18개월 동안만 싸우고 바로 짐을 싼다는 거다. 한 센텐스가 아니다.
두 센텐스다. 오바마의 웨스트포인트 연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증파가 주테마인지, 철수가 주테마인지 구별이 안 간다. 스피겔지의 가보르 스타인가르트의 말이다. 한 마디로 가짜같이 느껴지는 연설이라는 혹평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왜 두 센텐스의 연설인가. 모든 유권 층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군통수권자로서 전시 대통령은 오직 하나에만 집중해야한다. 어떤 희생을 무릎 쓰더라도 승리를 염원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연설에는 그러나 승리라는 말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출구전략을 미리 밝혔다.
이 연설을 군통수권자의 연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표를 고려한 정치인 연설이라는 것이다. 전시의 대통령이다. 그런 오바마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든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 점에서 위험성을 감지한 것이다.
맥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은 오직 승리를 위한 면밀한 계산 끝에 군사적 입장에서 미군증파를 요청했다. 그 요청을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희석시켰다. 안보로부터 정치를 분리시키기를 거부한 것이다. 포브지의 지적이다.
미군증강에는 심리적 측면도 있다. 병력을 증파한다는 그 자체가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그럴 때 반군세력은 동요한다. 그리고 미군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지면서 회교근본주의 게릴라들은 고립상황을 맞는다.
그런데 철군시기를 미리 밝혔다. 머지않아 떠난다는 걸 예고한 것이다. 그 미국을 아프간 국민들은 얼마나 신뢰할까. 심리전에서, 또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다.
왜 두 센텐스의 연설인가. 여기에는 또 다른 보다 근본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마도 오바마 스스로가 승리의 확신이 없는 데서 비롯된 의식의 혼돈이 그런 식으로 노출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의심한다. 미로를 헤매고 있다. 확고한 전쟁에의 의지가 결여돼 있다. 오바마 전쟁의 최대 난적은 오바마 일수도 있다. 누가 한말이던가. 그 말이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다. God, bless America! 기도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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