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같은 블럭 쇼우(Shaw) 부인의 집 앞에 푸른 바탕에 노란 고딕 대문자로 ‘Estate Sale Today’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올해 그녀가 산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여든 중반의 쇼우 부인은 하늘나라로 갔다.
그녀의 산보시간은 일정했다. 매일 해지기 한 시간 전쯤 비스듬한 햇살을 받으며 모임에 참석하는 것처럼 멋을 내고 걸었다. 키가 155센티미터도 채 안 돼 보이는 백인 치고는 작고 마른 체구였다. 머리카락을 모두 쓸어 올리고 그 위에 가발일지도 모를 부풀린 머리를 해 단아한 여성미를 풍겼다. 빳빳하게 주름을 세운 잘 다려진 바지에 우아한 블라우스를 입고 꼿꼿한 자세로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창밖으로 보았었다.
혼자 살면서도 외로운 기색 없이 언제나 당당하며 멋지게 미소 짓고 자그마한 것에도 칭찬하려 했던 그녀를 기억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밤새 내린 이슬에 젖어 촉촉한 앞마당 잔디를 보니 어느 해인가 너희 집 잔디는 어떻게 관리해서 이렇게 푸르느냐고 묻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촉촉하고 잘 다듬어진 잔디 아래 캄캄하고 좁은 곳에서 그녀의 육신은 지금 누웠으리라.
영국 시골풍의 방 네 칸짜리 이층 벽돌집이다. 20여년 전에 유행했을 털 길이가 10센티미터 넘는 낡은 흰색 카펫이 집안 온 바닥을 덮고 있었다. 털 덤불 가장자리 발길이 덜 닿아 수북한 곳에서 생쥐나 다람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선단체 관계자임이 분명한 몇 사람의 도우미들이 커피를 마시며 현관에서 계산할 채비를 했다.
아침 8시 정각 현관문을 열자 줄 서서 기다리던 방문객들은 우르르 집안으로 밀려들어가 그녀의 가득 찬 옷장과 서랍장과 부엌의 캐비닛까지 모두 열어 제치고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성급한 사람들은 입구에서 나눠준 종이봉지 서너 개씩을 가득 채워 안고 벌써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쏜살같은 시간의 도둑은 일시에 훔쳤다.
집안 가득히 쌓여 있는 50~70년대의 가구와 램프, 계속 사용해 왔던 흔적이 역력한 재봉실의 1957년도 재봉틀과 수많은 옷과 액세서리 등 소지품들을 보니 한 사람이 소유하며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물건들이었다.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모두 집안과 창고에 가득 쌓아두고 산 것이었다.
물건더미가 엄청나서 혹시 그녀의 것이 아닌 것을 가져와 함께 판매하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 같이 아주 작은 사이즈의 구두와 아담한 외투와 옷이 틀림없이 그녀의 것임을 증명했다.
옷과 모자와 스카프는 이층의 각 침실 옷장과 방안 옷걸이에 가득 쌓여 있고 100켤레도 넘어 보이는 구두가 침실 건넌방 신발장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구두는 대부분 새 것 같고 비슷한 디자인의 베이지색, 흰색이었다. 복도의 벽에는 전 세계 여행지의 기념 쟁반과 액자가 촘촘히 걸려 있었다. 여행과 샤핑을 무척 좋아한 그녀의 취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천천히 이 방 저 방을 둘러보고 각 방에서 그녀가 홀로 내다보았을 창밖과 정원을 바라보았다. 화분도 판다고 뒷마당으로 나가는 유리문에 써 두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뒷마당 젠 스타일 정원으로 혼자 나갔다. 꽃나무 가꾸기도 그녀의 취미인 것을 알았다.
소꿉장난 같은 자잘한 화분부터 제법 큰 벤자민 고무나무 화분까지 스프링클러가 아닌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화분이 제법 많았다. 정원 가장자리의 모든 부분을 차지한, ㄷ자형 등받이 없는 길고 긴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쳐다볼 때마다 당연히 쇼우 부인 생각이 날 물건들은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빨간 벽돌집을 떠났다. 집으로 와서 급하게 여기 저기 열어 제치고 버려야 할 물건들을 재빨리 쓰레기통에 버렸다.
구세군에 보낼 것도 싸 두었다. 몇 개월 꼬박꼬박 물을 준 네 개의 호접란 화분도 ‘온실 없이는 꽃 피우기가 쉽지 않으니 과감하게 버리라’는 네이버 검색의 충고대로 했다. 쇼우 부인과 같은 노년을 흉내 내기에는 젊고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멀다며 허둥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물쭈물하다가 어느새 다가올 준엄한 심판의 날에 온갖 쓰레기 더미와 함께 있고 싶지는 않다.
윤선옥 /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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